[인물포커스]연봉 24억 휠라코리아 윤윤수 사장

  • 입력 2001년 2월 1일 18시 45분


《유능한 20%의 인물들이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20/80의 세상. 모두가 능력, 능력만을 외치는 시대에 ‘우직스럽게 성실한 사람’이 승자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어 우리를 안심케 한다. 더구나 그렇게 말하는 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월급장이임에랴. 윤윤수(尹潤洙·56)휠라코리아사장은 지난해 기본급 17억원에 성과급 7억원을 합쳐 24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91년 휠라 사장 취임 때의 5억원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난 돈이다. 지난해까지 그가 받은 연봉 합계는 139억원. 이 가운데 62억여원을 세금으로 내 지난해 납세자의 날엔 표창까지 받았다. 월급장이에게는 신화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시간으로 따지면 한시간에 100만원을 버는 윤사장에게 “오늘 인터뷰 때문에 200만원이 공중에 날아가겠다”고 농을 건넸다. 그는 돈 잘버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산 사람들이 늘 말해왔듯이, 돈을 벌려고 죽기살기 하면 사람이 추해질 뿐 돈이 붙지 않습니다. 나는 일 자체를 즐겼을 뿐, 돈을 생각하고 일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이야 돈 잘번다고 ‘매직 퍼슨(Magic Person)’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지만 서른살까지 그의 삶은 암흑이었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지 백일도 안돼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혼자된 고모의 손에 자랐다. 고교 때 폐암으로 아버지를 잃은 것이 한이 돼 의사가 되겠다고 의과대학을 지원했으나 두번이나 떨어졌다. 삼수 끝에 한국외국어대학 정외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학교 시험 때 공부안한 친구가 그와 시험지를 바꾸던 것이 발각나 1년 정학까지 먹었다. 도대체 되는 일이 없는 우울한 젊은날이었다.

“더이상 무의미하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에 군입대를 인생의 돌파구로 삼았지요. 카투사 의무병으로 들어가 내 삶의 밑천을 잡았습니다. 그게 영어였어요.”

그때 익힌 영어는 미국종합판매회사인 JC페니와 화승 수출담당이사,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엄청난 무기로 활용된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그를 보고 친구들이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가 성공비결로 치는 것은 영어보다는 정직 성실 공정과 같은 교과서적인 덕목이었다. 한국최고의 월급장이가 된 비결로서는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가. “정직하고 성실하고 공정하게 살아도 이제껏 되는 일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것 말고 진짜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으르듯 물었다.

“그렇게 묻는다면…근성이라는 게 있다고 할까. 그게 내 인생의 추진력이었어요. 근성이라는 말은 참을성과도 통하는데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져야해요.”

이탈리아의 세계적 브랜드인 휠라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의 근성 덕분이었다. 80년대초 미국 출장을 다니며 휠라 상표를 접했다. 그 브랜드로 신발을 만들어 미국에 팔면 장사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미 호머 알티스라는 미국인이 휠라 신발 라이센스를 갖고 있었다. 한국서 만든 신발에 휠라 상표를 붙여 팔자고 그를 설득했다. 하다하다 안되자 한밤중에 전화통으로 그의 아내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결국 매운 ‘조선고추’의 근성에 미국인이 손을 들었다. 사업 파트너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돈을 못벌었어요. 재주는 내가 넘고 돈은 알티스가 버는 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수했지요. 나는 어려서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내가 양보를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그는 이렇게 미련하게 살았던 시기가 있었던 까닭에 오늘의 수십억대 연봉이 가능했다며 “세상에 거저 되는 건 없다”고 말했다. 곰처럼 일했던 기간이 사실은 웅녀가 쑥과 마늘만 먹었던 인고와 투자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신발장사가 의류매출을 뛰어넘을 만큼 잘되자 91년 본사에서 신발 라이센스를 거둬들여 아예 윤사장에게 휠라코리아를 차리도록 한 것이다. 이때 알티스는 “진 윤(윤사장의 미국식 이름)이 나와 장사를 하면서 1년에 100만달러 이상을 벌었으니 그를 잡으려면 연봉을 그만큼은 줘야한다”고 말했다. 그의 연봉이 5억원으로 결정된 순간이었다.

올해가 휠라코리아 한국법인 창립 10년. 자본금 3억5000만원으로 시작된 이 회사는 첫해 매출 신장률 274%를 올린데 이어 해마다 평균 80.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1470억원. 매출 대비 순이익으로는 전세계 휠라그룹 가운데 가장 높고 외형으로서도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꼽힌다. 본사 엔리코 프레시 회장이 “전세계 휠라인이여, 휠라 코리아를 본받으라”고 했던 말이 전설처럼 내려올 만큼.

‘베니스의 상인’의 후예들이 혀를 내두르는 상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윤사장은 ‘유리알 경영’으로 이를 설명했다.미국의 세계적인 컨설팅전문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최근 35개국을 대상으로 경제와 경영, 법률 및 윤리 불투명성을 평가한 ‘세계 경제 불투명성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불투명지수 73으로 5위의 불명예를 차지한다고 한다. 사장 취임 이후 그가 맨처음 했던 일은 직원들의 뒷거래를 막는 일이었다.

협력업체 대리점 등의 향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직원들을 전체 인원의 절반 가까이 잘라냈다. 대리점만 하나 열면 매달 수천만원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곳곳에서 청탁이 몰렸지만 그는 단호했다. 대리점과 본사를 연결하는 전산망에 과감히 투자해 재고를 줄이고 분기별 경영실적을 직원들에게 공개했다. 성과는 인센티브 보너스로 협력업체와 직원들에게 돌려주었다.

“미국인들과 오래 거래를 한 덕분에 나는 원리원칙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미국식 사고방식을 익힐 수 있었어요. 한국사람들이 좀 ‘복잡’한데 사고를 심플하게 하면 자연히 투명해집니다. 지금 한국경제가 어려운 것도 기본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기본을 중시하는 그가 사람을 볼 때 먼저 따지는 것도 성실성이다. “그런 성실성은 제조업을 하는 굴뚝산업시대에나 적합한 덕목이지, 지금은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중시되는 정보화사회 아니냐”고 어깃장을 놓았더니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변하지 않는 기본적 덕목이 성실”이라고 윤사장은 답했다. “똑똑하지는 않더라도 우직한 바보같은 사람이 결국은 승자가 된다”며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능력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성실함쪽이에요. 어려서 아버지가 새벽부터 깨워 논어 맹자를 얘기하는 바람에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배었거든요.”

그래서 그가 제일 싫어하는 직원이 지각하는 사람이다. 부하가 지각을 하면 상관에게까지 호통을 치고 보너스도 깎는다. 진정한 리더십은 모범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까닭에 회사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도 윤사장이다. 새벽 5시경 기상, 오전 7시40분 정도면 어김없이 회사에 도착한다. 지난해말 심장수술을 받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건강까지 잃으면서 무엇때문에 그리 애쓰고 달려왔는지 후회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윤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열심히 뛰지않으면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살아보니까 인생은 도 아니면 모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업하다 실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전거타듯이,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각오로 뛰어왔어요.”

맨손으로 시작해 이만큼 일구어놓은 것이 얼마나 ‘익사이팅(Exciting)’한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섹스보다 익사이팅한 것이 비즈니스였다. 미국가서 몇백만불어치 오더를 따고 귀국 비행기를 타면 잠한숨 자지 못해도 입이 절로 벌어지곤 했다. 이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공장사람들은 또 얼마나 기뻐할까 싶어서.

고비고비마다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은 역시 아내였다. ‘사업동지’라고 부르는 이효숙씨(52)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을 졸업하던 74년.

결혼때 당시로서는 귀하기 짝이 없는 타자기를 들고온 아내는 그걸로 이력서 수십장씩 만들어 주었고 경리이자 운전기사 역할을 했으며 사업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꾸어왔다. 집한칸 온전하지 못했던 JC페니 근무 시절, 한 기업임원이 비리를 눈감아 달라며 돈다발을 들고왔을 때 당장 돌려보내라고 한 사람도 아내였다.

“나는 엄마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아내에게서 엄마를 느껴요. 내가 도약이 필요한 순간마다 아내가 발판이 돼주었어요. 난 당신을 믿으니까 하고싶은대로 해라, 안되면 같이 리어카 끌면 되지 않느냐구요.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아내라고 늘 말하지요.”

스스로 수줍음이 많은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원들은 그에게서 TV대하사극 ‘왕건’의 궁예같은 카리스마를 느낀다고 했다. 요즘 그는 서울고 동기인 최인호의 소설 ‘상도’를 읽으며 비즈니스는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추구해야 한다는 상인의 도를 생각하고 있다.

▼윤윤수 사장은?▼

1945년 경기 화성군 출생

64년 서울고 졸업

74년 한국외국어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

73―75년 해운공사

75―81년 JC페니

81―84년 ¤화승 수출이사

84년 대운무역 사장

85년―현재 케어라인¤ 대표이사

91년―현재 휠리코리아¤ 대표이사

99년 한빛은행 비상임이사

99년 한―이 비즈니스협회 초대회장

2000년 중소기업협동중앙회 정책위원

2000년 납세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00년 제10회 중소기업대상 대통령상 수상

△취미〓골프. 90타 정도. 당뇨병에 혈압이 높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 운동삼아 시작했지만 뜻대로 안돼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더 많다.

△영향을 받은 말〓서울고 교훈인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자. 투명한 경영도 깨끗하자는 서울고 교훈에서 영향을 받았다.

△존경하는 사람〓아내.

말말말

△“한국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하려고 했다면 나는 오늘을 이룰 수 없었을 거다.”〓한국에서의 기업활동이 대체로 투명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말을 하며.

△“부산에서 출마하면 당선될 수도 있을거다.”〓신발수출할 때 일체의 부패를 용납지 않아 지금까지 좋은 평판을 갖고 있다며.

△“생활비는 아내보다 내가 더 쓴다.”〓세금을 제외한 월급은 모두 아내가 갖고 있다면서. 도와야할 사람이 많아 집에서 쓰는 돈보다 자신이 쓰는 돈이 많다고.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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