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엄보성/시장기능 활성화가 경제 살길

  • 입력 2001년 2월 2일 18시 39분


올해 우리경제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수출증가세가 둔화되고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소비도 움츠러들어 경제성장률은 작년의 9%대에서 5%전후로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성장률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5%대의 성장 그 자체는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어서 아주 저조한 게 아니며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예측은 고무적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도 3%, 국제수지도 80억∼100억 달러의 흑자를 나타낸다면 경제의 전반적인 모습은 꽤 양호한 편이라 하겠다.

그런데 왜 이처럼 우려와 위기감이 팽배한 것일까. 그 이유는 3년 전에 겪었던 외환위기의 ‘학습효과’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 당시 우리는 몇 가지 구조적 문제가 엄청난 재난으로 치닫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아직도 기업이나 금융, 노동시장, 공공부문에 걸쳐서 해묵은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번 겪어 본 고통을 또 겪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두려움이 커지는 탓인 듯하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경제는 급속히 글로벌화돼 왔다. 금융시장은 국제금융시장과 긴밀히 연계되어서 미국의 나스닥시장과 금융정책 동향에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업도 지배구조나 경영의 투명성에 있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기업과 근로자의 인식도 글로벌화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말로는 시장경제를 외치면서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 경제정책도 시장경제지향형과 시장개입형 사이를 오가면서 일관성을 잃고 있다.

이젠 우리 모두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자기 모순적인 기대와 환상을 버려야 한다. 시장경제에선 지배적인 파워그룹이 있을 수 없다. 정부, 기업, 근로자 그리고 소비자가 대등한 자격으로 시장에 참여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시장의 가격변동을 통해서 경제 각 부문의 균형이 유지돼 나가는 것이다. 가격 메커니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특정 목적을 위해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려 들면 시장경제는 활성화될 수 없다.

최근 정부는 추가적인 부실기업 퇴출과 부실은행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금융시장의 경색을 완화시키기 위해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노력에 힘입어 올들어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회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우리경제의 위기탈출을 위해 꼭 필요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일들이 단번에 해결되는 듯하니 시원한 감도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너무 인위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특히 금융시장 개입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앞으로는 기업이 부실해지면 자연스레 퇴출되도록 해야 하고, 신용평가가 나쁜 기업의 대출이나 채권발행에는 그 만큼 금리가 높아지도록 하여 채권신속인수와 같은 인위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메커니즘과 경제의 자생력에 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시장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각종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 우리 경제의 활력이 타오를 수 있도록 모두의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엄 봉 성(아이낸스닷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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