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강제적 준조세 폐지 당연한 일▼
김태윤(한국행정연구원 규제개혁연구센터 소장)
관람객으로부터 문예진흥기금을 징수하고 있는 현행 제도의 부당함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과되고 있는 문예진흥기금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혹자는 그 부과금이 기부금 성격의 재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문예진흥기금 부과금은 부과 대상이 불특정 다수로서 매우 광범위하며, 강제성이 극단적으로 높고, 부담 주체와 부담금 용도간의 직접적인 연계성이 매우 미흡하다는 점에서 준조세임에 틀림없다.
이런 준조세를 경감해 국민 부담을 줄이는 것은 갈길 바쁜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 현실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예진흥기금 징수를 폐지하는 것이 사회의 문화예술에 대한 기대와 지원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작은 예로 정부는 이미 기금의 국고 지원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준조세를 정부의 정규 예산항목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니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 의지가 오히려 확고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문화예술계에서도 시민사회의 자발적 의사에 기초한 기부금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 개발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기금징수 폐지는 문화예술이 시민들에게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예진흥기금을 기타기금에서 공공기금으로 변화시키는 계획에 대해 일부에서는 문화에 관해 비전문적인 기획예산처가 기금을 관리하면 예술계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다양한 경쟁과 창의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우리나라 기금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다.
공공기금의 경우 기금 운용에 대한 계획과 평가 과정에 있어서 기타 기금에 비해 보다 심도 깊은 감시와 몇 가지 추가적인 요소가 부가되긴 하지만 사업의 선정은 관련 부처의 주도하에 구성된 기금운용심의위원회가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다만 기금의 운용과 관련된 계획을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국회에 보고하는 등 운용 계획에 있어서 행정적인 절차가 다소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수천억원의 공공자금 운용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예산 및 기획을 주관하는 부처와 최소한의 협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는 각종 기금이 방만하게 운영돼 국가경제사회의 효율적 운영에 부담을 주곤 했다. 문예진흥기금도 예외가 되지는 못해서 1999년의 경우 858건의 사업에 514억원을 배정해 획일적 나눠먹기식으로 재원을 배분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제 정부 부처간 협의를 통한 합리적인 사전 조율과 민간이 주도하는 엄정한 사후 평가의 틀 안에서 이런 무책임한 낭비는 근절될 것이다.
또 문화예술의 핵심적인 분야에 대한 전략적인 집중지원이 가능해지도록 내실화하는 계기도 마련된 것이다. 이는 곧 소수 인사가 아닌 국민 전체가 기금을 관리하는 효과로도 연결될 것으로 믿는다.
▼반대-유일한 창작 지원금 없애서야▼
정진수(성균관대 교수 한국연극협회 이사)
문예진흥기금 모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무엇보다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준조세 개혁’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 논리는 여러 허구성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그 논리대로라면 기금 모금 폐지로 극장 요금이 인하되고 국민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생겨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극장이나 제작자들이 꾸준히 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그간의 현실로 볼 때 입장료 인하는 기대하기 힘들게 돼 있다. 한마디로 기금 모금 폐지는 국민부담금 경감이나 준조세 개혁과는 무관하다는 증거다. 연간 250억원의 모금 규모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액이 줄어들 뿐 그로 인해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다는 얘기다.
문예진흥기금은 2004년 말까지만 모금하도록 정부가 99년에 발표해 모금폐지는 이미 문화예술진흥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문제는 불과 1년 전에 정해진 정책을 다시 변경해 모금시한을 금년까지로 만 3년 앞당겨 일방적으로 조기에 폐지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신뢰성 결여와 그 실제 효과 여부에 있다.
문예진흥기금은 당초 목표한 4500억원의 적립액에 도달해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예산당국이 모금 폐지 후 국고 지원으로 대체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힌 적도 없이 96년부터 국고지원을 중단했으니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반발은 당연하다.
문화예술 창작활동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문화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은 지극히 미비하다. 문화예산 1% 달성도 최근의 일이고, 문화예산의 대부분은 문화산업이나 문화인프라 구축에 사용되고 정작 예술창작을 위해 투자되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문예진흥기금 모금이 예술창작을 지원하는 유일한 기금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마저 폐지한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문예진흥기금을 공공기금화해야 하는 이유로 정부는 기금운용의 투명성을 들고 있지만 ‘투명성 확보〓공공기금화’라는 등식은 억지일 수 있다. 작년 기획예산처가 실시한 기금 평가에서 수많은 공공기금의 투명성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문예진흥기금은 공공기금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아왔으며 감사원과 문화관광부로부터도 감사를 받고 있다.
만약 민간기금이 공공기금화되어 국가예산 편성과 같은 방식과 일정으로 경제부처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통제된다면 문화예술 고유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지고 경직될 것이 뻔하다. 문화예술 지원의 세계적인 원칙은 국가가 재원을 조달하고 관리 및 지원은 독립성을 가진 민간기구가 담당하는 것이지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곳은 거의 없다. 더구나 민간기금의 공공기금화는 규제개혁과 민영화 등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 기본정신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문화예술 지원축소와 통제 강화를 초래할 문예진흥기금 모금폐지와 공공기금화는 마땅히 재고돼야 한다. 문화예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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