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밤 8시10분경 서울 강남지역 A학원 앞. 책가방은 물론 도시락 가방까지 들고 집으로 가던 ‘예비 중학생반 수강생’ 김모군(12·서초구 반포동 A초등 6학년)은 “집에 가서 수학 과외를 더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군은 방학 내내 오전에 학습지를 공부하고 오후 2시경 학원에 가 6시간 가량 공부한 뒤 밤에는 과외를 받았다.
김군처럼 보습학원 과외 학습지 등을 통해 교과 진도를 앞당겨 공부하는 초등학생들의 선행학습(先行學習)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해 6학년 때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마치는 학생도 상당수 있다.
선행학습이 성행할수록 학교 수업시간에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을 배우는 학생들은 흥미를 잃고 자거나 떠드는 등 ‘딴 짓’을 해 일선 초중학교 수업이 차질을 빚는 등 ‘공교육 붕괴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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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선행학습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압구정동, 서초구 반포동 일대. 이 일대 학원들은 방학 동안 오전 9시∼오후 6시반, 학기 중에는 오후 5시반∼밤 11시 공부하는 초등학생들로 만원이었다. 학원들은 외출 및 조퇴증이 있어야 외부 출입을 허용하는 등 엄격하게 수강생들을 통제했다. 비용은 월 35만∼45만원선.
흔히 6학년 때 중1 과정을 앞서 배우던 선행학습 형태는 4학년 때 중1 과정을 시작해 6학년 겨울방학에 중3 과정까지 훑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3년 선행’으로 앞당겨지고 있다.
대치동 B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김모씨(41)는 “경시대회 열풍이 불면서 3, 4학년들도 중학교 과정의 수학과 영어를 배우는 추세”라면서 “이번 방학에 외국에 간 5, 6명 빼놓고 내가 맡은 반 학생들이 대부분 선행학습을 한 것 같은데 갈수록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나빠져 큰일”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생 딸을 둔 학부모 이모씨(36·서초구 잠원동)는 “지방에서 몇 달 전 이사왔는데 딸 친구 엄마들이 ‘좋은 학원’은 비밀인 양 안 알려줘 놀랐다”면서 “지방에서도 선행학습이 인기지만 서울은 심하다”고 말했다.
서울학원총연합회 관계자는 “지난해 과외금지 위헌판결이 나온 뒤 개인과외까지 난립해 선행학습을 더 부추기고 있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암기과목까지 가르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제점과 대안〓과열된 선행학습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이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공교육 붕괴를 부채질하고 있다”면서 “선행학습이 지나치면 학생들에게도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서울교육대학 송광용(宋光鏞·초등교육과)교수는 “사고력과 비판력이 없이 문제풀이와 암기에 치우치는 속성 교습은 학생을 가짜로 똑똑하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 C중학교 수학교사 김모씨는 “미리 배운 아이들은 이해력이 떨어지고 응용문제 풀이에도 약하다”면서 “오히려 수업을 잘 듣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교조 김대유(金大猷·39)정책연구국장은 “선행학습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일본에서는 학원들이 선행학습은 학교와 학원의 공멸을 자초한다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면서 “교과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평가권을 교사에게 대폭 위임해 선행학습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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