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현대그룹의 붕괴가 가져올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고려할 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책의 균형과 원칙에 관한 문제다. 어떤 다른 대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현대건설의 몰락보다 더 큰 시장충격을 감수하면서까지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가. 그런 정부가 작년 10월말 현대건설 1차 부도 이후 이 기업에 대해서만 유독 하루가 다르게 유순해지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현대건설의 추가 부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한 자산실사만 해도 그렇다. 1차 부도를 낸 현대건설이 제시한 자료를 실사 과정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지원을 하다가 3개월 만에 새로운 문제가 터지니까 이제 와서 뒤져보겠다는 것은 당국이 앞뒤조차 가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잠재부실이 추가로 밝혀진들 사태가 여기까지 벌어졌는데 정부가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최악의 경우 국민이 공적자금으로 메워줘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은행돈을 넣어 출자전환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정몽헌 회장이 자리를 내놓으면 상태가 더 악화될 정도로 경영시스템이 낙후돼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분석이고 보면 정부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지금 국민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일으켜 세우면 현대건설이 과연 재생의 길을 찾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 납세자들은 정부의 우유부단한 정책 때문에 앞으로 또 얼마나 큰짐을 져야 할지 모른다. 경쟁력을 상실한 특정기업을 정부가 시장원리에 역행하면서까지 특혜성 지원으로 연명시키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현대의 대북(對北)사업 때문인가. 그렇다면 정부는 이를 솔직하게 국민에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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