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한부신의 아파트 사업을 대신 떠맡아야 할 대한주택보증은 자본잠식 상태에서 1500억여원의 추가 부담이 생겨 심각한 경영압박을 받게 됐다. 민간건설 업체들이 짓는 아파트의 분양보증 사업을 하는 공기업 대한주택보증의 부실로까지 이어진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부신이 꾸려온 사업장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은 1만2000여가구도 입주지연으로 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분양보증 대상이 아닌 상가와 오피스텔 계약자 3600여명은 중도금 2500여억원을 변제받을 길이 막막하다. 이들은 대부분 영세상인이거나 중산층 투자자들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의 투자원금을 떼이거나 장기간 묶이게 돼 한부신 부도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공기업의 부도 선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부신이 경제위기 이후에도 신탁사업을 계속 확대할 수 있었던 데는 공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정부의 감독 소홀이 빚은 한부신의 부도는 사실상 정부 신뢰의 부도라고 해서 지나치지 않다.
한국감정원과 같은 공기업이 민간 건설업체들이 다 하는 부동산 신탁회사를 자회사로 설립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건설교통부나 역대 정치권에서 내려온 사장들이 로비와 압력에 휘둘려 재무구조가 나쁜 회사들로부터 사업성이 없는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수탁하면서 안으로 곪기 시작했다. 공기업의 자회사가 흔히 그렇듯 한부신도 모기업인 한국감정원의 퇴직자 취업알선 창구로 바뀌어 개발신탁 사업 경험이 없는 한국감정원 퇴직자들이 영업실무를 맡아 환부를 키웠다.
한부신의 부도는 사실상 1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는데도 감독 당국과 채권단은 건설경기가 살아나기만을 기다리며 부실을 방치했다. 지금도 건설교통부와 금융감독원은 서로 핑퐁을 치며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기업 금융 공공 노사 등 4대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아직도 가장 뒤진 부문이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 부문이다. 임자 없는 공기업에서 단물을 빼간 집단은 따로 있고 부도로 한숨을 쉬는 사람들은 영세상인과 중산층 투자자들이다. 관련 부처와 기관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문책이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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