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은 약품 오남용과 함께 약제비 지출을 감소시켜 국민과 의보재정의 부담을 줄이자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낱알판매 금지로 일반의약품 값이 크게 오르고 의보재정에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진료비가 급증해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늘어난 약값〓직장인 강모씨(40)는 가벼운 감기가 들자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종합감기약을 사려다가 깜짝 놀랐다. 10알짜리가 1650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배 이상 올랐던 것.
시민단체인 건강연대가 지난해 12월 일반 의약품 50종을 대상으로 27개 제약회사와 20개 약국의 평균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약국에서 곧바로 살 수 있는 일반약 값이 처방전을 갖고 보험을 적용할 때보다 2.5배 이상 비싼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례로 빈혈약인 훼럼포라정은 60정 단위 기준으로 보험약가가 6840원인데 약국에서 소비자가 살 때는 평균 2만5000원으로 3.6배가 됐다. 또 보험적용시 900원인 해열진통제 바이엘아스피린(100mg 60정)은 일반약으로 25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의료기관의 정액제 상한액을 1만2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올려 환자가 의약분업 전처럼 2200원만 내게 했다. 환자가 1000원을 내는 약값 총액기준도 8000원에서 1만원으로 조정했다. 의약분업으로 인해 환자 부담이 늘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의료계 요구에 따라 일반 의약품의 낱알판매가 올해부터 금지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환자들이 한두알만 필요한 약을 통째로 사게 된 것. 제약사들은 소포장 비용을 이유로 약값을 20∼60% 가량, 많은 경우 2배로 올렸다.
주부 유모씨(52)는 “필요하지도 않은 일반약을 10알이나 30알씩 통째로 사야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며 “이야말로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민부담으로 떠넘겨진 의보재정 적자〓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진료비가 지난해 11월 이후 계속 1조원을 넘어서 그렇지 않아도 적자이던 의보재정이 더욱 위태롭다. 지난해 진료비 지급액은 월평균 7532억원인데 2001년 1월에는 1조558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진료비 지출이 늘어난 이유는 지난해 의약분업과 의료계 폐업여파로 의보수가가 세차례에 걸쳐 24% 가량 인상됐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비싼 약을 처방하면서 당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던 약제비가 오히려 늘어난 것도 진료비 지급액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의보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의보료 대폭인상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가 소액진료비 본인 부담제를 도입키로 내부방침을 정한 데는 의보재정 적자를 줄여보자는 고민이 담겨 있다.
보건복지부 송재성(宋在聖)연금보험국장은 “의약분업 전에 1억건으로 추정되던 약국의 직접조제 등이 사라지고 의료기관의 약 처방 관행이 바뀌면 장기적으로는 약제비가 절감되고 보험재정도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전문가 진단▼
의약분업이 △약품 오남용 방지 △약제비 절감 △환자의 알 권리와 건강권 확보 △양질의 의약품 유통 등 본래 도입목적을 살리려면 담합과 임의조제를 적극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
담합과 임의조제 등 불법행위는 분업제도의 성패와 직접 관계가 있으므로 감시기구를 확대하고 신속정확한 조사와 판정을 통해 법 집행을 강력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의약품에 대한 실거래가 상환제의 조속한 정착이 필요하다. 99년 1월에 도입된 이 제도는 완전히 정착되지 못해 의약품 유통에 부조리가 많은 실정이다. 실거래가 확인을 철저히 하면 약제비 절감으로 담합을 막을 수 있고 의료보험 재정을 안정화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다. 지금까지 시민단체는 보건의료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많은 의문을 제기해 왔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확한 자료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하되 일단 결정된 사안은 강력히 수행한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조 재 국(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