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낙하산 사장 퇴출시켜야

  • 입력 2001년 2월 5일 18시 53분


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의 부실을 만든 주범은 공기업 사장 자리를 전리품처럼 나누어준 역대 정권이다. 공기업 사장 자리 나눠먹기는 군사정권이나, 문민의 정부나, 국민의 정부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한부신을 2조원의 부실덩어리로 키워놓은 것은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에 정치권과 감독부처에서 내려온 두 명의 낙하산 사장이었다. 이들은 정치권의 압력과 기업의 로비를 받고 경성그룹 등 건설회사에 수천억원대의 특혜성 지원을 했다.

한부신의 낙하산 인사는 현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이나 행정부서의 낙하산에 밀린 공기업의 토박이 임원들은 자회사를 만들어 다시 낙하산을 탔다. 이번에 부도가 난 한부신에도 모기업인 한국감정원 출신의 임직원들이 많았다.

경제위기와 함께 출범한 현 정부는 초기에 4대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강도 높은 공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듯했다. 최고경영자를 공모하는 사장추천위원회 제도를 두고 예외적으로 국민회의와 자민련에 몇 자리를 나누어 주면서도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조심스럽던 분위기는 작년 4·13총선을 치르면서 싹 바뀌어 공기업 사장자리는 낙선낙천자 위무용으로 전락했다. 최근 공조에 복귀한 자민련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노리는 인사들의 발걸음이 잦다니 이제는 경제위기 시절의 조심스러움도 찾아보기 어렵다.

낙하산 사장들은 사업부문 감축이나 감원 등 구조조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낙하산에 반발하는 노조를 무마하기 위해 이면계약으로 격려금 등 당근을 나누어 주기에 바쁘다. 판공비로는 실세 국회의원들의 후원회비를 내주며 정거장처럼 잠시 머물다 가면 그만이다. 이런 낙하산 사장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공기업 개혁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염불이다.

이번 한부신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공기업의 부실과 비효율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사기업에는 구조조정을 하라고 다그치면서 정작 세금과 공과금으로 운영하는 공기업은 비전문가들에게 선심 쓰듯 내줘도 되는 것인가.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는 5일 국정보고에서 기관장 공모제 등 공기업 인사쇄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공기업 부문에 배경이 든든한 낙하산 사장이 가득한 현실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올지 모르겠다. 경영능력이나 전문지식에 대한 검증이 안된 낙하산 사장들에게 효율적인 경영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이다. 공기업 개혁은 낙하산 사장의 경영능력 검증과 무능 사장 퇴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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