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Thomas Wolfe (1987)
감독: Brian De Palma
출연: Tom Hanks, Bruce Willis
이른바 '베스트 셀러' 속에 그려진 법은 대체로 현실의 법이다. 대중문학은 법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따금씩 단순한 법의 투영에 그치지 아니하고 법에 대한 '강론'을 담기도 한다. 그 강론의 내용과 수준에 따라 결과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토마스 울프(Thomas Wolfe)의 베스트 셀러(1987) 소설을 압축한 영화 <허영의 불꽃>(Bonfire of the Vanities)은 현대 미국의 사법제도가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들은 파헤치면서도 법의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강론하는 수작이다. 울프는 조나선 스위프트처럼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을 극화시키는 역량이 뛰어난 작가라고 당대 최대의 석학 법률가 리처드 포즈너 (Richard Posner)는 평한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불안스럽게 공존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여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두 개의 세계에 난무하는 허영의 불꽃들을 조명한 작품이다. 뉴욕은 미국의 심장이자 미국사회의 축약이다. 예리한 눈과 혀를 갖춘 사람에게 뉴욕은 볼거리, 쓸거리를 지천으로 제공해 준다. 실로 뉴욕은 별명대로 "거대한 사과" (Big Apple)이다. 아담의 사과처럼 인간의 모든 원죄가 함께 사는 곳으며, 그 누구도 거대하고도 다양한 면모의 공 (地球)의 전모를 한꺼번에 볼 수 없다.
영화는 한 개인적 비극 뒤에 숨은 사회 전체의 도덕적 타락에 초점을 맞춘다.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6억 달러 짜리 증권도박, 미술관, 허영의 불꽃을 지피는 "돈 죠바니" 오페라, 정부(情婦), 파크 애비뉴(Park Avenue)의 초호화 아파트를 무대로 벌어지는 도심 최상류 사회와 소수인종 범죄자, 저임금 하층민들로 극도로 무질서 판인 업무폭주로 시달리는 변두리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의 형사법원을 대비시킨다.
월스트리트의 젊은 증권 딜러 셔먼은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자신의 차에 정부, 마리아를 태우고 실수로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의 슬럼가를 헤매게 된다. 문자 그대로 '한번 방향을 잘 못 틀면 (a simple wrong turn) 파멸의 문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마치 온 우주의 주인(master of universe)인양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온 그는 뉴욕의 지하철 운전수이었던 아버지의 근검절약의 미덕을 홍소(哄笑)하는, 성인이 되어 한 번도 지하철을 타보지 않은 상류사회의 신입생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사악한 인간은 아니다. 애인에게 걸려다 아내에게 전화를 잘못 걸 (one wrong phone-call)정도로 엉성한 난봉꾼일 뿐이다.
"백인은 모두 어디 갔어요?" (Where are all the white people?) 마리아의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다. 자동차 타이어로 통행을 차단한 흑인 불량배 둘이 시비를 걸어온다. 당황한 마리아가 운전대를 잡아 위기에서 탈출하나 그 과정에서 한 청년을 친다. 시종일관 경찰에 신고할 것을 주장하는 셔먼을 마리아가 묵살한다. "자동차를 운전한 것은 나야. 그러니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가 아니냐?" 차량 조회 끝에 셔먼은 체포되어 살인미수로 재판을 받는다.
언론, 정치인, 종교인, 모두가 법원을 정의의 광장 대신 협잡의 난장으로 삼는다. 시장 선거에 나서려는 검사는 인구의 절대다수인 흑인 표가 필요하고 따라서 상류층 백인 피고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종'에 혈안이 된 언론은 사건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한다. 흑인목사는 피해자 불량아동을 모범생으로 추켜세워 단순한 사고를 인종문제로 비화시킨다.
자식의 사고로 한 밑천 잡겠다는 가족, 피해자의 합의를 막아 정치적 사건으로 이용하려는 검사, 법정에서 거짓 증언하는 옛 애인 마리아, 모두가 허영의 불씨들이다. 오로지 한 사람, 흑인 판사만이 법과 품위라는 인간의 본성을 강론한다. "날더러 인종주의자(racist)라고? 정의란 법이다. 법은 원칙을 정하려는 최소한의 인간의 노력이다. 그 원칙인 인간의 품위(decency)에서 나온다." 품위란 할머니가 가르쳐 준 바로 그것이야.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품위 있는 인간이 될 수련이나 쌓아. "
냉소적 천재, 알코올 중독의 작가 언론인 피터의 눈과 입을 통해 판사의 강론에 해설이 덧붙여진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영혼을 잃으면 최종결산은 적자이다"라며 서막을 열어준 그의 내레이션은 "그 후로 셔먼 멕코이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을 잃었지만 영혼만은 구제했다."라는 종장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이어진다. 평생을 비교적 정직하게 살았던 셔먼은 법정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마리아의 거짓을 응징하기 위해 녹음테이프를 튼다. 마리아의 육성이다.
"자동차를 운전한 것은 나야. 그러니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대화자의 동의 없이 녹취한 증거는 녹취자가 피고인 자신인 경우에만 법정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법의 기술적인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셔먼은 문제의 테이프는 자신이 직접 녹음했다는 거짓 선서를 하고 풀려난다.
영화는 이미 가정과 직장, 그리고 장래를 잃는 셔먼 사건을 작품으로 쓴 피터에게 큰 상이 주어지고 수상식에 모든 허영의 불씨였던 인간들이 참여하는 축하를 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인간의 품위를 지켜주고 영혼을 구제하는 법의 임무에 대한 최후의 강론인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 a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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