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맛있는 수다]밥상 위의 꽃밭 '구절판'

  • 입력 2001년 2월 6일 11시 50분


어제는 저희 친정아빠의 생신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게 결혼을 하고 나면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훨씬 애틋해지는 것 같은데요, 아마 시부모님께 지극정성 들이는 것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늘 부족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갑자기 효녀라도 된 듯 그럴듯한 선물을 해드리리라 결심을 하고 혼자 기분 좋아하고 있는데 저희 엄마 전화하셔서는 "당장 내려오라!"시는 겁니다. 걸어서 3분 거리인 친정집에 설렁설렁 내려가보니 우리 엄마 한상 차릴 기세로 이것저것 장을 봐놓고 저를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게다가 구절판을 만들어야한다며 손을 씻고 오라는데 전 정말 "아뿔사..." 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무슨 잔치상을 차렸다 하면 구절판을 만들기를 좋아하시는데 물론 엄마가 직접 만들지는 않으십니다. 만만한 딸들을 부려먹지요. "오이 채썰어라, 당근 채썰어라, 달걀지단 만들어라, 밀전병 부쳐라..." 엄마가 시키는대로 다 하다보면 결국 구절판은 저와 동생이 다 만들고 말거든요.

뭐, 물론 이럴 때나 딸 노릇 하는 거에 불평불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구절판이라는 것이 보통 짜증나는 요리가 아니거든요. 저희 집은 이름처럼 아홉가지 속을 만들지는 않지만 오이, 당근, 표고버섯, 쇠고기, 달걀 노른자, 흰자 지단을 각각 채썰어 지지고 볶고 한다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지요. 거기다 밀전병은 어떻구요? 얇고 동그랗게 부쳐야함은 물론, 자칫 잘못하면 자기들끼리 들러붙어서 떡이 되는데 그 짜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겁니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꼼짝없이 구절판을 만들게 된 전 언제 효녀가 되기로 결심했나 싶게 투덜투덜거리며 당근도 볶고 고기도 볶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희 아빤 "역시 딸들이 최고야∼딸 없는 사람은 심심해서 어떻게 사나∼"하며 좋아하시더군요. 그 말씀에 꿀꿀하던 제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까짓 거, 이거 못하랴?' 시댁에 가서는 하루 종일 전 부치고 앉아있어도 짹소리 못하면서 친정에서만 큰소리 치는 거 너무 웃긴 일이니까요.

구절판은 만들기는 짜증나지만 저도 좋아하는 요리입니다. 담백하고 산뜻하고 조화로운 요리! 국에 찌개에 와∼하고 몰려들어 먹는 것보다는 한 장 한 장 밀전병을 놓고 살짝 볶은 야채와 고기를 얹어먹는 모습이 훨씬 있어 보이지요? 또 보기는 얼마나 좋다구요? 색색이 볶은 야채를 빙 둘러놓고 가운데에 하얀 밀전병, 거기 잣을 한 알 딱 올리면 너무너무 이뻐요. 정성이 많이 들어간 요리라 그런지 어른들이 특히 좋아하시더군요.

아무튼 아빠 생신에 노력봉사한 끝에 얻은 결론!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건 확실히 '돈'이 아니라 '정성'인 모양이예요. 물론 가끔은 '돈'도 무지 좋아하시지만...

***'구절판' 만드는 법***

재 료 : 오이, 당근, 표고버섯, 쇠고기, 달걀, 밀가루, 물, 잣, 쇠고기 양념(간장, 마늘, 후추, 소금, 참기름)

만들기 : 1. 오이의 껍질 쪽만 벗겨내 채썬다

2. 당근을 채썰어 놓는다

3. 표고버섯을 채썰어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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