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담은 '여름의 환'을 비롯해 '열일곱' '그래도 제법 괜챦아' '내 곁에…' 총 4편의 하이틴 로맨스 작품이 수록돼있다.
화끈한 사랑이야기보다는 잔잔한 여운과 감동을 주는 스토리가 주종을 이루는 이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연처럼 다가오는 사랑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랑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여름의 환(幻)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외삼촌댁에 얹혀 살고 있는 고등학교 3년생 송혜주. 공교롭게도 외삼촌의 딸 수연과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가 첩이라는 사실 때문에 지독한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호영이 그 사람이다.
호영은 밝게 자란 수연과 달리 아무래도 어두운 구석이 있는 혜주에게 더 동질감을 느낀다. 문제는 호영이 혜주뿐 아니라 수연도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
그들은 결국 서로를 좋아하면 할수록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졸업을 앞둔 학창시절의 마지막 여름, 서로의 감정을 숨긴 채 성인식을 치루는 이들의 아픈 사랑이 아련한 추억처럼 그려진다.
외로운 주인공들은 말을 아끼고 표정으로 말한다. 일요일 오후의 햇빛, 숨막힐 듯한 녹음 등 자연요소를 아름답게 묘사해낸 그림체가 눈길을 끈다.
◇열일곱
"그때, 나는 열일곱살이었다"
'여름의 환'이 고3년생의 사랑을 얘기했다면 '열입곱'은 고1년생들의 사랑을 얘기한다. 가수 박진영을 닮은 듯한 남자 주인공 '박진영'은 소위 문제아다. 남을 괴롭히는 불량학생은 아니지만 공부도 못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해서 선생님과 학생들의 눈밖에 나있다. 여주인공 세영이는 그런 그를 자신과는 다른 부류라고 혐오하지만 뜻하지 않게 위험에 처한 자신을 구하고 난 뒤 점차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자동차 수리소에서 일하며 집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진영은 세영과 사랑에 빠질만한 여유가 없다. 비로소 마음을 열어준 세영을 받아주지 못하고 진영은 아버지를 찾으러 캐나다로 떠난다.
"왜 그토록 모든 것이 안타깝고 슬펐는지. 그때 나는 열입곱살이었다"라고 외치는 세영은 그 사랑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도 제법 괜찮아
주인공인 21살의 여대생 전지원은 1년 365일 '머피의 법칙'에 시달리는 여자다. '억세게 재수옴붙은 신세'를 한탄하고 다니는 지원은 옛날 여자를 못잊은 남자한테 차일 뿐더러 다음 날엔 책방 아르바이트에서도 잘린다.
<그래도 제법 괜찮아>는 이렇게 불운에 시달리는 지원이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별자리 운세에 유난히 집착하는 지원에게 어느날 갑자기 훌쩍 커버린 여동생의 남자 친구 윤서가 다가온다. 윤서는 한살 연하지만 지원보다 어른스러워 그녀를 감쌀줄안다. 그러나 이 만화는 이둘의 사랑이 미완성으로 남도록 내버려둔다. 이번달 운세는 그리 나쁘지 않음을 말해주는 윤서의 눈빛속에 지원을 생각하는 마음이 역력해 독자들에게 그 뒤를 짐작하게끔 하지만. "별점의 새로운 사람이 윤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나래이션으로 끝맺음하는 이 만화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엮은 덕분에 한층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내곁에…
앞의 작품보다는 '성숙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15살 딸을 둔 32살의 젊은 엄마와 그 엄마가 운영하는 술집에 자주 찾아오는 6살 연하 성무의 러브 스토리가 그것. 재밌는 것은 마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에서처럼 어린 딸 민아의 눈으로 이들의 사랑을 서술해가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그 사랑을 반대하지만 후에 아픈 엄마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는 민아. 이 작품은 15살의 사춘기적 감성으로 바라보는 성인들의 사랑을 가감없이 담아내고 있다.
오현주<동아닷컴 기자>vividr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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