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총재는 일관되게 6·25전쟁과 테러사건 등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김위원장 답방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그가 김위원장의 답방을 사실상 반대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는 국회 연설에선 이를 전제조건으로 못박지 않고 “김위원장이 방한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시하겠다”는 정도로 물러섰다.
이총재는 국회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대법관 때 KAL기 폭파사건의 재판장을 맡았는데 법정에서 유족들의 울부짖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지금은 그런 정서가 많이 희석됐지만 무고한 승객을 몰살시킨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언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꼭 (김위원장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죠”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총재가 특히 국회 연설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으니 이번에는 김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차례다. 김위원장도 서울에 와서 한국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접 봐야 한다”고 말한 것은 김위원장 답방의 당위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총재는 나아가 “중요한 것은 그의 방한 자체가 아니라, 그가 어떠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오느냐 하는 것”이라며 “김위원장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온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김위원장의 답방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당 관계자는 “이총재가 국회 연설을 준비하면서 김위원장이 답방해서 직접 만나자고 제의할 가능성 등 예상되는 여러 변수를 깊이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총재의 국회 연설은 김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는 적극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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