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일본경제의 침체는 한국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30년만에 최대폭으로 하락, 경기침체속에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다소의 회복세를 보이지만 산업생산성은 분명히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며, 기업들의 투자도 싸늘하게 식어있는 상황이다.
세계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증폭되면서 일본경제의 안전판 구실을 해온 수출산업도 미진한 움직임으로 보이며,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주력기업들의 주가가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일본경제계에 2000년 회계연도 결산기인 3월을 얼마 앞두고 '3월 금융대란설'이 빠르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3월 금융대란설의 발단은 △증시침체와 △부실채권 급증 탓이 크다.
일본의 금융대란설에 촉각이 곤두서는 것은 자칫 국제 금융시장이 커다란 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등 동남아 이머징마켓이 투자된 이른바 '재팬머니'가 본국으로 회수될 경우 이 지역에 또다른 금융위기가 발발할 수 있다.
◆일본경제 침체가 미치는 영향
미국의 수요가 감소하는 가운데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일본경제의 불황으로 인해 아시아시장은 힘든 한해가 될 것이며 경제 성장률도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재팬머니를 앞세워 아시아 시장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 수년간 정치적 불안과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경제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개월간 달러화에 비해 약세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 엔화는 다른 아시아 지역의 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엔화가치가 하락할수록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경쟁력은 그만큼 취약해지고 아시아 각국의 화폐가치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더 낮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가하락 탓에 전통적으로 증권투자를 자본금에 포함해 온 일본 은행의 취약성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이로인해 3월에 신용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일본경제가 마치 세찬 맞바람때문에 열심히 페달을 밟아봤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이클 선수같다"고 묘사하며 "주가가 계속 하락할 경우 오는 3월 신용위기 같은 것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업계는 금융계는 커다란 혼란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결국 침체와 부진을 알리는 각종 경제지표가 주가하락을 부추기고, 이는 결국 부실채권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 현재 일본경제의 상황이라고 FT는 결론지었다.
그럼 일본의 부실채권은 어느 정도이며, 주가는 얼마나 빠졌는가.
◆부실채권
일본의 16개 은행이 오는 3월말 결산에서 청산해야 할 부실채권은 2조엔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증권투자를 자본금에 포함시켜온 오랜 관행 때문에 증시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해결방법이 없다.
물론 일본은행들이 총 14조엔을 상각처리했던 지난 1998년보다 심각성은 덜한 편이지만, 부실채권을 털어낼 밑천은 영업이익 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가하락에다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각 기업들의 자산가치를 추락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신용등급도 동반 하락, 충당금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금융청은 대출 심사기준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여서 이래저래 힘든 형편이다.
따라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빈사상태의 기업들에 빌려준 돈은
대형 참사를 격발시킬 뇌관이 되고 있다.
무려 2조40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 있는 다이에, 아오키건설 등은 금융대란을 일으킬 수 있는 대형 뇌관이라는 게 현지의 경제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경제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닛케이225평균주가는 1만3300대 초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작년 한때 2만을 넘어서던 평균주가가 1년도 채 안돼 약 40%나 폭락한 것이다.
이같은 주가 수준에서는 16개 은행 가운데 8개 은해의 주식평가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만약 3월말까지 1만3000선이 깨질 경우 주식투자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은행은 도쿄미쓰미비 등 4개 은행 뿐이다.
◆일본정부의 평가
아소 타로 경제기획청 장관은 최근 로이터통신과 회견에서 "일본경제는 2001∼2002회계연도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인 1.7%를 달성할 것"이라며 "일본경제는 침체이지 후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회계년도 하반기에는 일본경제가 스스로 회복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일본경제의 회복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금융계 인사들도 "최근의 상황은 지난 1998년과 전혀 다르다"면서 "3월 금융대란설은 경제여건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너무 과장되서 표현된 것이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최근 엔화의 강세를 한 예로 들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1월 한때 달러당 119엔대까지 치솟다가 최근에는 114엔대로 가치를 회복하고 있다.
7일에도 도쿄외화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오전 11시50분 현재 달러당 114.85엔에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엔화 강세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결산을 앞둔 일본기업들의 엔화수요 확대와 NTT도코모의 대규모 해외공모(32억 달러 규모)로 엔화수요가 일시적으로 급증한 때문이지 경제 펀더멘털에 의한 절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경제정책의 다른 한축을 이루는 일본중앙은행의 하야미 마사루 총재도 "해외 경제성장세 둔화와 해외 및 국내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포함해 당분간 경기 하강위험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경제를 이끌어가는 경제기획청의 수장과 중앙은행의 총재가 일본경제를 놓고 다른 얘기를 하는 것만 봐도 일본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방형국<동아닷컴 기자>bigjo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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