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자살-폭탄 사이트 청소년 앗아간다

  • 입력 2001년 2월 7일 18시 25분


인터넷상의 자살 및 폭발물제조 사이트가 독버섯처럼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아직 이성적인 사고가 확립되지 않아 새로운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6일 전남 목포시와 충북 청주시에서 평소 자살사이트에 접속했던 것으로 알려진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7일에는 인터넷에 폭발물 제조 사이트를 개설하고 구체적인 폭탄 제조법을 제시한 10대가 낀 네티즌 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검찰과 경찰은 7일 현재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있는 음란 폭력 사이트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판단, 대대적인 ‘사이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실태〓6일 오후 9시경 전남 목포시 상동 B아파트 뒤편 화단에 이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6년생 A군(13)이 떨어져 숨져 있는 것을 이 아파트 주민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A군은 평소 학교생활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으나 PC방을 즐겨 드나들었으며 친구들에게 ‘자살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서에서 “죽고 싶다. 사후세계도 궁금하다”고 밝혔다.

또 이날 오후 4시경에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 고물상 뒤편 밭에서 청주 모중학교 3년 L군(15)이 음독, 숨진 채 발견됐다. 모범생이었던 L군은 지난달 26일 가출전 자신이 접속했던 자살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컴퓨터에서 삭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자살사이트를 매개로 한 청부자살이 처음으로 발생한 데 이어 한달여만에 부산 서울 충남연기 등지에서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한 동반자살과 이를 시도하려는 사건이 세 차례나 발생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해 12월22일 20개 자살사이트를 폐쇄했으나 올해 1월22일 다시 23개로 늘어나 하루평균 0.74개씩 생겨났다고 밝혔다.

사정은 폭탄 제조 사이트도 마찬가지. 서울경찰청 사이버 범죄수사대는 7일 인터넷에 8∼53종의 폭탄제조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유료 강좌까지 개설한 서울 모중학교 3년생 K군(15)과 대학생 양모군(24) 등 3명을 형법상 ‘폭발물사용 선동죄’로 붙잡아 조사중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폭탄제조 사이트는 17개까지 개설됐다가 최근 정보통신윤리위 시정요구를 받아 11개가 자진폐쇄됐다.

특히 3일 대구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에 대해 수사당국은 공식제조된 폭탄이 아니라고 밝혀 이들 ‘폭탄사이트’가 관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진단: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건전한 놀이와 문화공간이 너무나 부족하고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있는 우리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고려대 의대 곽동일(郭東日·64·정신과)교수는 “이들 사이트의 범람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라며 “경기침체와 급변하는 환경속에서 획일성을 강조하는 문화와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책이 일반화되지 못한 한국적 사회분위기가 극단적인 탈출구를 찾게 한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서이종(徐二鍾·사회학과)교수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너무 인터넷의 기술적인 면, 속도 등에만 치중했다는 점을 반성하고 사이버 에틱(도덕)에 대한 교육과 진지한 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책: 검찰은 현재 전자상거래 사기, 명예훼손, 음란 폭력물 등 반사회적 사이트가 20여만개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7일 대검 중수부 컴퓨터 수사과와 서울지검 컴퓨터 수사부 산하에 음란물 및 도박 등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는 ‘인터넷 범죄센터’를 설립,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도 문제 사이트들이 국경을 넘나든다는 점을 감안, 국제콘텐츠등급협회(ICRA), 싱가포르 인터넷학부모자문그룹(PAGI) 등과의 국제 공조를 모색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인터넷 운용에 대한 사회적인 기준과 부작용을 막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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