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혜경/결혼생활도 '기술' 필요하다

  • 입력 2001년 2월 7일 18시 28분


지난 5년 동안 서울가정법원의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해오면서 나는 많은 부부들의 고민과 갈등, 이혼과 재결합을 지켜봤다.

이혼에는 부부가 합의에 의해 이혼을 결심하고 재산분할이나 자녀양육 문제를 결정하는 합의이혼과 사법부의 결정에 의존하는 재판이혼이 있다. 재판이혼을 하는 경우에는 배우자 쌍방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고, 친척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을 증인으로 내세우면서 부부관계의 매우 사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한편 어린 자녀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부부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그대로 재판 단계로 가기보다는 조정 단계를 통해 원만한 의사결정을 보도록 하고 있다. 조정 단계까지 온 당사자들은 서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어서 배우자를 비난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려고 애쓴다. 이런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들이 이혼을 결심하기 전에 좀 더 일찍 하소연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하고 올바른 방향을 안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가사조정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성격이나 생활습관 등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이혼하게 되는 부부들이 있는가 하면 결혼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 이혼하는 부부도 많다는 사실이다. 가족학자들은 결혼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인 열정적인 감정이 결혼생활에서 제기되는 여러 역할에 대한 책임감으로 전환될 때 결혼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혼사례들 중에는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결혼생활에서 요구되는 책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경우가 많다. A씨는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사표를 내곤 했다. 재취업과 사표 제출을 반복하면서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자 A씨의 부인이 아이들 과외를 시작해 돈을 벌게됐다. 돈 문제와 부인의 잦은 외출 문제로 갈등이 빈번해지고 A씨 부부는 모두 실망과 불신감이 커져 이혼하게 됐다.

또 사소한 문제들인데도 적절히 대처하는 기술이 부족해 문제가 커져 이혼하기도 한다. B씨는 결혼하고 나서 우연히 시어머니가 과거에 절도죄로 복역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고부갈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B씨는 한 순간 감정이 격해지면서 남편에게 시어머니의 과거를 들추며 따지는 바람에 이혼하게 된 경우다. 부부관계에서는 내가 그 순간에 배우자를 이기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부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에는 결혼이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당연한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자신이 누구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 나의 적성에 맞는가를 고려함은 물론 내가 직업적 요구를 얼마나 잘 맞춰갈 수 있을지도 생각한다. 결혼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최혜경(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이화여대 교수·가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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