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는 부부가 합의에 의해 이혼을 결심하고 재산분할이나 자녀양육 문제를 결정하는 합의이혼과 사법부의 결정에 의존하는 재판이혼이 있다. 재판이혼을 하는 경우에는 배우자 쌍방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고, 친척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을 증인으로 내세우면서 부부관계의 매우 사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한편 어린 자녀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부부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그대로 재판 단계로 가기보다는 조정 단계를 통해 원만한 의사결정을 보도록 하고 있다. 조정 단계까지 온 당사자들은 서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어서 배우자를 비난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려고 애쓴다. 이런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들이 이혼을 결심하기 전에 좀 더 일찍 하소연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하고 올바른 방향을 안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가사조정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성격이나 생활습관 등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이혼하게 되는 부부들이 있는가 하면 결혼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 이혼하는 부부도 많다는 사실이다. 가족학자들은 결혼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인 열정적인 감정이 결혼생활에서 제기되는 여러 역할에 대한 책임감으로 전환될 때 결혼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혼사례들 중에는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결혼생활에서 요구되는 책임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경우가 많다. A씨는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사표를 내곤 했다. 재취업과 사표 제출을 반복하면서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자 A씨의 부인이 아이들 과외를 시작해 돈을 벌게됐다. 돈 문제와 부인의 잦은 외출 문제로 갈등이 빈번해지고 A씨 부부는 모두 실망과 불신감이 커져 이혼하게 됐다.
또 사소한 문제들인데도 적절히 대처하는 기술이 부족해 문제가 커져 이혼하기도 한다. B씨는 결혼하고 나서 우연히 시어머니가 과거에 절도죄로 복역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고부갈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B씨는 한 순간 감정이 격해지면서 남편에게 시어머니의 과거를 들추며 따지는 바람에 이혼하게 된 경우다. 부부관계에서는 내가 그 순간에 배우자를 이기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부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에는 결혼이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당연한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자신이 누구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 나의 적성에 맞는가를 고려함은 물론 내가 직업적 요구를 얼마나 잘 맞춰갈 수 있을지도 생각한다. 결혼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최혜경(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이화여대 교수·가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