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어린이 천국’

  • 입력 2001년 2월 7일 18시 37분


한국인의 의식에서 어린이가 ‘독립된 작은 인격체’로 받아들여진 것은 길게 잡아야 반세기 남짓일 것이다.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선생이 1922년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어린이의 존재를 선언했다지만 그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내 새끼 내 맘대로 하는데 누가 뭐라느냐’는 식이었다. 지금이야 크게 달라져 오히려 너무 오냐오냐하고 키워 애 버린다는 소리가 귀에 익을 지경이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어린이는 여전히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일 뿐이다.

▷최근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 어린이 10명 중 3명은 학교에서 돌아와 직접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고 한다. 그 이유야 어떻든 많은 어린이가 오랜 시간 어른의 보호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어린이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며 각종 사고나 범죄의 희생자가 될 위험성도 커진다. ‘매맞는 아이’들도 줄지 않아 ‘아동학대 긴급신고전화’(1391)에는 매달 1000건이 넘는 신고가 들어온다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400여명의 어린이가 생활구역이나 학교주변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사실이다. 1996년부터 98년까지 모두 3만6500여명의 초등학생이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 사망자 가운데 65%가 보행 중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른들이 좀더 주의하고 안전운전을 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고가 났을 리 없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 한국의 ‘어린이사고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매년 10만명당 25명의 어린이가 각종 사고나 상해로 숨져 유럽선진국의 다섯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1등’이다. ‘공공유아(公共乳兒)’라는 말이 있다. 버젓한 어른이지만 운전법규 등 공공질서를 지키는 데는 젖먹이나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이런 ‘공공유아’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린이사고 사망률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게다. ‘어린이 천국’은 언제나 올지….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