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나]강석진/"축구 이야기로 수학 가르쳐"

  • 입력 2001년 2월 7일 18시 44분


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
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
최근 내가 지도하는 한 대학원생을 불러 야단을 친 적이 있다.

“선수가 되고 싶어, 아니면 해설자가 되고 싶어?”이 학생은 내가 아끼는 학생이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까닭에 새로운 지식에 대한 흡수도 빠르고 멋있는 수학이 무엇인지도 알며 위대한 수학자의 계보 정도는 줄줄 외고 다닌다. 그러나 그것 뿐이라면 ‘수학 선수’가 될 수는 없다.

유럽과 남미의 선진축구를 많이 봐 눈이 높아진 이른바 ‘축구 지식인’들이 하는 소리를 한번 들어 보자.

“선진 축구의 흐름은 4―4―2 전형을 통해 기계와 같은 조직력의 기반을 다지고 지단이나 피구 같은 천재적인 선수의 창의적인 기량과 ‘생각하는 축구’를 변증법적으로 접목시켜 포스트모던을 뛰어넘는 예술의 수준으로 승화시킨 것이죠.”

물론 수준 높은 축구팬은 수준 높은 축구문화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예술적 차원의 축구에 대해 말로 떠드는 것과 동네 축구라도 몸으로 직접 하는 것은 ‘땅과 하늘’ 차이다.

축구 선수는 축구 경기를 몸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자기 기술을 개발하여 체득하고, 실전에서는 이 ‘주특기’를 자유자재로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

‘수학 선수’도 마찬가지다. 자기 주제를 찾아 그 이론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정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축구 선수가 주특기를 개발하여 실전에서 활용하는 과정과 같다. 겨우 ‘남의 수박 겉핥기’만 하면서 무슨 세계 최고의 지성을 섭렵한 것처럼 설치는 사람은 기껏해야 ‘장진구형 지식인’(연속극 ‘아줌마’를 보라)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끼는 학생에게 ‘수학 관전평’보다 ‘주특기’를 연마하는 데에 더욱 노력할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오늘도 나는 학생들을 앞에 놓고 ‘축구로부터 배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마라도나 좀 봐라. 슛은 왼발로만 하는데도 세계를 제패했잖아? 중요한 건 몇 가지라도 확실한 주특기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