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권이 국민의 불신과 혐오도 아랑곳없이 힘 겨루기에만 열중해 오다 이제야 모처럼 민심을 읽고 그에 부응하는 목소리를 낸 것은 다행이다.
물론 여야가 큰 틀의 정쟁 지양을 얘기했지만 현안에 대한 진단과 해법 등 각론은 여전히 현격하게 다른 게 사실이다. 이 총재는 정치대혁신을 강조하며 정치보복 금지, 부정부패 추방, 정경유착 근절 등을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이어 “법과 원칙이 훼손되고 검찰권과 조세권이 정치공작과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한 대목은 여권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를 정면으로 공박한 발언이다.
한 최고위원은 그동안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집권당과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한다면서 여야 토론과 합의로 난제를 풀어나가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자민련과의 확고한 공조, 강한 여당으로의 새 출발,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 등에 대한 기존의 여권의 주장을 되풀이해 강조함으로써 야당의 정치 행태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시국에 대한 진단과 해법은 서로 다르지만 이런 차이를 죽기 살기식 싸움으로 몰고 가느냐, 아니면 대화와 협상으로 근접점을 찾느냐에서 정치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다. 그동안 수없이 나온 ‘정쟁 지양과 민생 우선 정치’ 다짐을 이번에 특히 국민이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정말 실천하는지 지켜본다는 얘기다.
대표연설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남북문제에 대한 여야의 인식변화다. 특히 이 총재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기존의 시각보다 진일보한 자세를 보인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한국전쟁 등에 대한 사과를 답방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그가 이번에는 조건을 걸지 않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시할 것’이라고만 한 것은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본다.
한 최고위원이 이 총재의 방북과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제안한 것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야가 민생우선의 정신과 정도(正道)정치를 하려는 의지만 확실하다면 어떤 문제든 논의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