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11일 한국떠나는 美대사 보스워스부부

  • 입력 2001년 2월 8일 18시 37분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미국대사가 3년2개월간의 서울근무를 마치고 11일 귀국한다. 보스워스대사는 최강대국 미국의 국력, 한미관계가 어느 나라 사이보다 밀접하다는 유리한 배경 덕분에 서울주재 외국대사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의 연설이나 인터뷰는 한미관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됐고, 한국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거울이 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근무 마지막 날들마저 인터뷰와 강연 등으로 바쁘게 보냈다. 미국대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서울에서 근무했을까. 7일 오후 서울 정동 대사관저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평가 등 그의 속내를 들어봤다. 남편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한 부인 크리스틴 여사도 인터뷰에 참여했다. 보스워스대사는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학의 플레처 외교대학원학장으로 변신한다.

―동아일보는 대사께서 부임하신 직후 애완 고양이(세바스찬)가 11일간 검역을 받았다는 얘기를 가장 먼저 다루었습니다(97년12월10일자 37면 참조). 그리고 귀국하시기 전 마지막 인터뷰를 하는 등 인연이 많습니다. 고양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요. 그리고 관저에 있던 개는 어떤가요.

“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걸 아는지 불안하고 초초한 기색을 보입니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합니다. 안타깝게도 저희가 키우던 개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어요. 나이가 17살이나 됐으니까요.”

―대사께 깊은 관심을 보였던 한국 언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물론 때때로 대사관 활동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저의 의견을 귀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 감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론은 투명성 감시와 공정하고 책임있는 보도 사이에서 전반적으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다고 봅니다. 한국언론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열린 귀를 가지고 의견을 물어왔기 때문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외교생활 최대 하이라이트▼

―많은 한국인들이 주한 미국대사는 어떤 자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미국대사는 어떤 자리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갖게 되셨는지요.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주한 미국대사를 맡은 것이 저에겐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3년은 저의 30년 외교생활중 ‘최대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업무면에서도 긍정적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매우 따뜻하면서도 강인하고 또 직선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사께서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중 가장 빈번히 언론에 등장한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터뷰도 많이 하셨고 여러 행사에 초청돼 강연도 많이 하셨습니다. 어떤 생각으로 인터뷰와 강연에 응하셨습니까.

“개인적으로 인터뷰나 강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언론과 접촉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미국대사로서 미국의 견해와 생각을 한국인들에게 직접 알리는 것이 저의 핵심적인 임무이기도 합니다. 인터뷰나 강연은 가장 효과적으로 미국의 견해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군사 경제적으로 냉정하고 비정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터뷰나 강연을 통해 미국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내도 미국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뜻을 알리려는 노력이 성공적이었다고 보십니까.

“제 노력이 결실을 거두었는지는 측량하기 어렵지만 3년전 부임했을 때보다 현재 한미관계가 더욱 튼튼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한미관계가 열린 자세로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됐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성공했고 그렇게 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혼자의 힘으로 한미관계가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한국인과 미국인으로 구성된 대사관 직원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부인께서도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최근 발간한 요리책 ‘대사와 함께 하는 만찬’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요.

“영문판은 2000권 정도 팔렸고 한글판도 반응이 좋습니다. 조만간 유엔본부 서점에서도 판매될 예정입니다.”

―특히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어떤 것인가요.

“순두부를 좋아합니다. 이번주 내내 바빴는데 오늘 점심에 겨우 짬을 내 대사관 근처에 있는 ‘감촌’ 식당에서 순두부를 주문해다 집에서 먹었습니다.”

―대사께서도 한국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공식 일정이 없을때는 한국 식당에 자주 갔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음식을 즐기는데 순두부 두부김치 만두 비빔밥 등을 좋아합니다.”

―미국 대사가 주한 외교사절중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에 대사부인에게도 자연 관심이 집중됐을텐데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고 한국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두 가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미대사관과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후원한 한미 미술작가 전시회와 요리책 발간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뛰어난 한국인과 함께 일하고 알게 돼 기쁩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자주 한국을 방문할 것입니다. 올해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한국관광 홍보를 위한 명예대사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여성의 사회활동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미약한 편입니다. 부인께서는 한국의 여성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 여성들은 어머니와 부인으로서 가족에게 헌신적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여성들, 30대에서 50대 여성은 가정에 헌신적이지만 못지 않게 사회 활동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한국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책 낸일 기억에 남아▼

―주한 미국대사는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지도층과 쉽게 접촉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한국 지도층 인사들과 만나 외교업무를 수행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대통령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과 접촉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또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는데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의견을 이리저리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편이기 때문에 숨은 뜻을 이해하려고 고민한 적도 없습니다. 저 역시 말만 하는게 아니라 듣기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만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제가 미국을 대표하는데다 한미관계가 중요해서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업무를 위해 사람들을 만날 때도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기는 합니다만 선진국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한국이 조만간 선진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시는지요.

“한국은 여러 방면에서 이미 선진사회에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국제 경쟁에서 필요한 저력과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전체적으로 훨씬 개방된 사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고립적인 자세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친구를 많이 사귀셨을텐데 주로 어떤 분들을 만나셨습니까.

“전 주미대사를 비롯한 정계인사는 물론 학계 언론계의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됐습니다. 여기를 떠나면 그들이 그리울 것입나다. 종종 친구들을 대사관저로 초청해 토론회를 겸한 만찬을 가진 것이 즐거운 추억입니다. ”

―여가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많은 일을 했습니다.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시내 곳곳을 걸어서 둘러봤습니다. 이태원 명동 경복궁을 거닐고 미술관과 상점에도 자주 들렀습니다. ”

―알아보는 한국인이 많지 않던가요.

“언론에 제 얼굴이 많이 등장하니 알아보는 한국인도 많았습니다. 또 제가 키가 크다보니 눈에 잘 띄기도 합니다.”

―정치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한미관계와 북미관계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일부에서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한미관계가 냉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부시 행정부는 우선 한미관계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진 뒤 지금까지 유지해온 억지정책에 바탕을 둔 포용정책을 계속 끌고가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결론을 내릴 것으로 봅니다. 미국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한국 정부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할 것입니다.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 장관의 미국 방문은 이같은 공조체제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한국 정보통신 분야 강점▼

―한미정상회담은 언제쯤 이루어질까요.

“정상회담의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몇주간에 걸쳐 준비를 위한 논의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중 하나이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향후 몇 달간 가질 일련의 정상회담 가운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회동은 선두그룹에 끼어 추진될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현재 경제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습니다. 한국은 현재 단기외채의 두배에 달하는 1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경제가 회복됐습니다. 기업들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은행들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고통이 수반되고 있지만 구조조정이 늦어질수록 사회적인 비용 부담은 늘어날 뿐입니다. 한국의 이웃나라에서는 신속히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아서 경제가 10년전으로 후퇴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장점을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 근로자와 기업가는 유연성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또 한국인들은 소득을 써버리는 대신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저축하고 있습니다. 높은 교육수준과 근로자의 윤리적 의식은 한국이 국제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는 자산입니다. 한국인은 특히 정보통신 분야에서 강합니다.”

<정리〓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만난사람=방형남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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