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리더십과 책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21분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毛澤東)은 1949년 봄 시바이포 비밀사령부를 떠나 베이징으로 향했다. 일용품을 싼 짐은 먼저 보냈다. 마오와 류사오치 저우언라이 주더 등 정치국원들은 각자의 지프에 부인들과 함께 탔다. 당연히 행장은 간편했다. 그러나 마오의 옆에는 그가 전쟁 중에도 언제나 끼고 지낸 두툼한 책 뭉치가 놓여 있었다. 역대 황제와 제후장상의 통치내력을 담은 사기(史記)와 자치통감, 그리고 중국어 어휘사전과 어원사전이 그것이었다.

▷공산주의 사상 서적은 한 권도 없었다. 역대 어느 황제보다 강력한 중국 통치자로 부상한 마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와 그 인민을 다스리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사상보다 더욱 시급했던 것이다. 베이징 중난하이에 거소를 정한 뒤에도 마오는 그 고전들을 언제든지 손이 닿는 침실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곤 했다. 나중에 한 방문객이 그의 서재에 마르크스는 물론 레닌 엥겔스 스탈린의 저서 등 공산주의 고전이 없는 것을 보고 “체면치레로라도 그런 책을 비치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건의했다고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어느 날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만약 무인도로 귀양가게 되어 성경 외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습니까?” 킹 목사는 잠시 생각하다 바로 플라톤의 ‘공화국’을 들었다. 그는 “다른 어떤 책보다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출중한 리더십을 보인 사람들이 선택하는 책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 시대의 흐름을 바로 읽고 인류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고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드러난다고 한다.

▷엊그제 한 인터넷 서점이 계층별 선호서적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청와대 민주당 한나라당 등에서 주로 주문하는 책 속에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 ‘원칙중심의 리더십’ 등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비록 정치와 권력의 고전이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아무튼 리더십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고민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 다행스럽다. 다만 리더십 서적을 그렇게 탐독하면서도 정치는 왜 그리 못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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