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흐의 인간적 얼굴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33분


◇고흐의 인간적 얼굴/프랑수아 베르나르 미셸 지음/김남주 옮김/232쪽 1만3000원/이끌리오

귀는 흰 붕대로 싸여 있다. 반쯤 무표정한 눈으로 앞을 비스듬히 응시하고 있다. 화가의 자화상이다. 이 그림은 미술 화보집 표지에도 등장하지만 종종 전혀 다른 분야의 책에도 쓰인다. 정신병리학 교재, 또는 개설서의 표지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남프랑스의 뜨거운 햇살을 화면 가득 펼쳐낸 태양의 화가. 전해지는 대로 그는 과연 미치광이였나? 에세이스트 겸 소설가인 저자는 고흐가 귀를 자르고 난 뒤 20개월의 길지 않은 시간을 ‘정밀화’로 그려낸다. 그 기간 동안 고흐는 정신병동에 수용과 퇴원을 반복하고, 결국 총으로 배를 쏴 최후에 이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흐는 ‘미치광이도 저주받은 자도 아니었다’. 그의 정신병이란 오늘날 프로작(Prozac) 몇 알로 치료할 수 있는 우울증에, 가벼운 간질 발작이 동반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화가 자신은 “때때로 그것은 절망적인 홍수처럼 시야를 온통 덮어버린다. 슬픔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야”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 끝없는 우울의 근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고흐 자신은 “우리의 신경증은 지나치게 예술에 치우쳐 있는 우리의 생활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또한 숙명적인 유전 때문이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동생 테오는 형이 죽은 2개월 뒤 정신병원에 수용돼 4개월 뒤 형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더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가 즐겨 마셨던 독주 ‘압생트’는 테르펜이라는 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었다. 이 물질이 이 시대 많은 예술가들을 신경증으로 앓게 했다. 궁핍에 쪼들렸던 고흐는 독성이 강한 싸구려 압생트를 즐겨 마셨다는 것. 이 독물은 시각을 적녹색맹으로 유도해 노랑과 파랑에 민감하게 만든다. 그의 만년 화폭을 보라! 그를 담당했던 의사들의 신상기록도 흥미롭다. 그를 마지막으로 맡은 닥터 가셰. 놀랍게도 그 자신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심지어 논문에서 ‘자살은 전부라고 할 수 없지만 대부분 우울증의 해결책’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고흐가 ‘해결책’을 구사하도록 방조한 것일까.

최후의 질문. 그의 광기가 없었다면 그의 예술도 없었을까? 저자는 고흐가 우울증에 맞서는 방법으로 강렬한 색채에 열광했다고 말한다. 고흐 자신도 만년의 자신을 따라다닌 이 벗을 기꺼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조금 미쳐 있다면 그것은 광기의 불안정에 맞설 만한 진정한 예술가라는 뜻이 아닐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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