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차 문화에 대한 유럽인의 동경과 경외. 여기에서 유럽의 근대사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다도(茶道)문화를 소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던 기존의 책과는 분명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매력적이란 말이다.
일본 나라산업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1부에서는 16세기경 동양의 녹차가 유럽으로 건너간 이후 유럽 자본주의 근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동양의 녹차문화가 어떻게 홍차문화로 변해갔고 커피 코코아와 어떻게 세력 싸움을 벌였는지, 그리고 영국에서 각별한 인기를 누리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등을 추적한다.
2부에서는 19세기 일본 개항 이후, 자본주의 시장에 내던져진 일본 녹차(녹차문화)가 중국차 인도 실론(스리랑카)홍차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다 끝내 세력을 잃고 마는 과정을 밝힌다. 전체적으로 보면 차를 둘러싼 갈등의 세계사라 할 수 있다.
18세기는 유럽에서 홍차 문화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저자는 이것이 중상주의 시대문화를 대변한 것이라고 본다. 유럽인들이 중국 인도 등지에서 차를 들여온 것은 제국주의적 침략의 일환이었다는 말이다. 차를 지배함으로써 동양을 지배하려 했던 욕망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다름아닌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적 욕망이었다.
이런저런 논의에도 불구하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차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들.
17세기 네덜란드에선 ‘끽다망국론(喫茶亡國論)’까지 일었다. 귀부인들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사치스런 티 파티(tea party)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701년엔 이같은 풍조를 풍자한 ‘차에 미친 귀부인들’이라는 연극까지 공연될 정도였다.
영국은 지금 세계 홍차의 절반을 소비할만큼 최대의 홍차 국가.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엔 곡절도 많았다. 18세기 영국에선, 차 마시는 것은 사치이고 시간 낭비이며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뜨거웠다. 당시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남성적인 맥주가 더 매력적이다. 차를 마시지 말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19세기말 일본 차에 관한 대목도 재미있다. 일본 정부가 차를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 각종 정보망을 활용했던 이야기며, 외국에서 벌어진 중국 녹차 우롱차, 인도 실론 홍차와의 치열한 세력 다툼 이야기며, 모두가 박진감 넘친다.
머리말에서 밝힌 저자의 집필 의도가 완벽하게 구현되지 못해 다소 아쉽지만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이 만만치 않다. 더욱 대단한 것은 차라는 것 하나에 매달려 이렇게 매력적인 책을 써내는 일본인들의 집요함. 차라리 무서움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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