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이 계보를 잇는 또 한 명의 이탈리아 여배우가 탄생했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탈리아 영화 ‘말레나’의 여주인공 모니카 벨루치.
“소피아 로렌 같은 이탈리아 여배우들은 브리지트 바르도와 같은 프랑스의 여배우와 달라요. 이탈리아의 여배우들은 관능적인 동시에 남성들을 감싸안는 존재지요.”
‘말레나’는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다시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 2차대전 당시 시칠리아 섬을 무대로 마을을 들썩거리게 만든 미모를 지닌 말레나가 남편의 전사(戰死) 통보를 받은 뒤 마을 주민들의 욕정과 질투로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도덕의 가면 뒤에 행해지는 집단 폭력을 고발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거의 대사없이 눈빛과 몸짓만으로 13세 사춘기 소년의 훔쳐보기의 대상을 연기하며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냈다.
영화속에서 그녀는 농익은 누드 장면뿐만 아니라 마을 광장에서 벌거벗겨진 채 집단 린치를 당하는 힘든 연기를 소화해냈다.
“린치 장면에서 분노와 절망감에 거의 정신을 잃었습니다. 배역 자체에 몰두하지 못했다면 부끄러워서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이탈리아에서 모델로 출발, 현재의 낭군인 배우 뱅상 카렐과 함께 ‘라파르망’과 ‘도베르만’ 등 주로 프랑스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는 오랜만에 이탈리아 영화계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말레나’는 제가 영화 경력을 쌓는 데 매우 중요했던 작품이에요. 이제 어디에서 영화를 찍든 내가 이탈리아 여배우라는 사실엔 변화가 없을 겁니다.”
<베를린〓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