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이들을 맡고 있는 육아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섬뜩하기까지 한 이 표현에 영유아관련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들 가운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글 싣는 순서▼ |
- 조기교육에 멍드는 아이들 |
유아의 보호와 교육이라는 공공의 문제가 ‘상품’이 되면서 육아의 계층간 불평등,
감시·감독체계의 허점, 전문성 부족 등 수많은 문제를 불렀고 그 와중에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육아의 잣대가 사라졌다는 비판도 높다.달리 판단기준을 갖지 못한 부모들로선 화려한
시장의 선전전에 따라 춤을 출 수밖에 없고, 그것에 못견뎌 하는 일부 젊은 부모들 중에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까지 속출하고 있다. 로 지금이야말로 영유아의 교육과 보호 문제를 둘러싼 혼선과 폐해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 개입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OECD국가들의 유아교육과 보호비용 부담 | ||
국가 | 연령 | 비용 부담 주체 |
프랑스, 이탈리아 | 2/3∼6 | 정부/지방정부-무상 |
영국 | 3∼5 | 정부-무상 |
스웨덴 | 4∼6 | 정부-무상 |
미국 | 5 | 정부-무상 |
3∼4 | 연방/주정부,지방정부,부모(부모몫은 최대 76%) | |
독일 | 3∼6 | 주정부, 지방정부, 부모 (부모몫은 소득에 따라 차등. 최대 20%) |
한국 | 3∼5 | 정부, 지방정부, 부모(부모몫은 최대 100%, 저소득층만 지원) |
▽영유아기 투자,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국제아동기금(UNICEF)은 지난해말 세계 아동현황보고서를 통해 국가가 영유아기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출생 후 3년 동안 시력과 감정조절, 습관적 행동, 언어 인지 등 뇌의 주요부분이 거의 다 발달하고 그것이 일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 보고서는 “영유아기의 투자가 성인이 된 뒤의 투자보다 훨씬 효과가 높으며 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성차별 등 사회분열을 치료하는 데도 훌륭히 기능할 수 있다”며 각국이 과감한 투자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유아 교육비용이 오히려 초등학교 교육비용을 능가할 정도로 영유아기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진다.
▽‘가정’에서 ‘시장’으로〓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 크게 다르다. 영유아에 대한 국가의 투자가 OECD 가입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라는 발표가 있을 정도다.
핵가족시대,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으로 가족의 기능이 약화되는 가운데 국가의 개입마저 없을 경우 육아의 기능은 자연히 시장으로 넘겨질 수밖에 없다. 99년말 현재 사립시설 점유율은 전체 유치원 약 8800개소 가운데 4400개소(49%), 전체 유치원아 53만여명 가운데 75.5%인 40만명이었다. 보육시설 역시 지난해 말 1만9000여개소 중 1만2000여개소(80%)가 사립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영유아관련 예산 5300억원(교육부와 보건복지부 합계) 가운데 대부분이 국공립시설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충당됐고 사립시설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반면 일본 스웨덴 등 선진국 아이들은 50% 이상 국공립시설에서 ‘보호와 교육’을 받고 있으며 국가는 사립에 대해서도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손놓은 국가〓‘국가의 방임’은 불충분한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히 비대해진 민간 부문에 대한 지도감독과 규제도 거의 없다.
98년 서울 관악구 국공립 어린이집 시설장들이 아이들의 급·간식비를 유용하고 ‘유령교사’를 만들어 인건비 등을 착복하다 적발됐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1월초 서울 서대문구의 한 구립 어린이집에서도 재발, 구조적 허점을 드러냈다.
관할 구청 또는 시청이 1년에 두차례 지도감독 하는 국공립시설에조차 이렇게 비리의 소지가 있는 마당에 민간 보육시설에 대해선 아예 감독조차 없는 것.
민간 보육시설 역시 영육아보육법에 따라 국가의 감독을 받아야 하나 이 규정은 인력부족 등으로 ‘사문화’된 지 오래다. 부모 역시 간섭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에서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이가 없는 셈.
한국보육교사회 이윤경(李允瓊)공동대표는 “학부모와 교사 등이 함께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제도화해 시설운영을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로부터 1년에 1회 이상 장학지도를 받는 유치원 역시 이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마찬가지. ‘형식적 수준’의 지도라는 얘기다.
▽산적한 문제들〓이같은 토대 위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선 보육분야에서 영아와 장애아 등을 위한 특수보육서비스와 시간제 보육, 방과후 보육, 야간보육, 24시간보육, 휴일보육 등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날로 커지고 있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치원 역시 학부모들의 의견에 휘둘려 ‘조기 사교육 열풍’의 중심에 서 있다. 어린이집 놀이방 선교원 등 다양한 시설들과 경쟁하다보니 학부모들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을 뿐더러 교육의 잣대도 갖추지 못한 것.
이밖에도 시대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과 지역별로 편중된 시설, 교사의 자질과 열악한 근무환경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새로운 개념 정립과 투자〓이같은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묘안은 사실상 없다. 우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서로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보육시설’과 ‘교육시설’의 차이가 모호해진 점 자체가 큰 걸림돌.
그동안 국가의 보육정책은 ‘보호자,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보장’과 ‘저소득층 복지’라는 제한적 목표를 위해 추진됐고, 유아교육정책 또한 ‘전업주부 자녀들을 위한 취학전 교육’이라는 제한적 목표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런 구분은 사실상 용도폐기된 지 오래다.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의 아동 가운데 절반 가량이 중산층 이상인가 하면 유치원아이들 중에 맞벌이 부부의 자녀가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을 정도다.
따라서 정부가 기본 개념을 한시 바삐 재정리하고 아울러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숙명여대 이기범(李起範·공동육아연구원 공동대표)교수도 “‘보육’과 ‘교육’을 현행처럼 분리하든 통합하든 어차피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라며 “더욱 중요한 일은 정부가 실태를 정확히 살피고 획기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작업이 늦으면 늦을수록 멍드는 건 아이들뿐이다.―끝―
▼선진국은 어떻게 …▼
선진국들의 영유아 정책은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이 민간보다 훨씬 크다는 점만은 공통적이다.
육아시설을 교육부가 관리하는 스웨덴의 경우 87%가 국공립이다. 나머지 민간부문도 대부분 비영리기관. 이에 따라 스웨덴 학부모들은 평균 육아비용의 10∼20%(99년)만 부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에서는 3∼5세 유아의 절대 다수가, 2세 영아의 35%가 무상으로 교육 및 보호를 받는다.
유아학교와 보육시설로 구분된 호주는 이원화라는 점에서는 우리와 같으나 관리주체는 복지부로 일원화돼 있다. ‘보육시설’의 설립 주체도 정부 16.2%, 민간 비영리단체 52.2%, 민간 영리단체 31.6%로 우리와 많이 다르다.
반면 일본은 우리와 여러 모로 비슷하다. 우선 보육시설과 유치원으로 나뉘고 후생성과 문부성이 각각 관리한다. 그러나 보육시설의 경우 58.5%가 공영이고 나머지 민간시설의 88.6%가 비영리 법인인 점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다.
이처럼 선진국은 어느 경우라도 아이들을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는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95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취학전 유아 교육 및 보호비용의 70∼90%를 국가가 부담했다. 부모 부담은 10∼30%에 불과했다는 것.
미국은 유아의 경우 교육 및 보호비용의 최대 76%를 부모가 부담했으나 헤드스타트(Head Start) 등 저소득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가의 지도 감독체계 역시 본받을 대목이 많다. 스웨덴과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육아시설에 대한 지도감독체계가 잘 짜여 있다. 호주는 정부가 시설인증제를 실시한다. 미국 역시 민간단체에서 육아시설의 프로그램 인증제를 실시하며 정부는 이를 장려하고 지원한다.
더구나 이들 나라는 다양한 상호보완적 제도를 병행하고 있다. 유급출산휴가, 유·무급 육아휴직, 유급간병휴가, 보육비용의 세금감면 등 가정내 양육 및 영유아보육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많은 것. 부러운 대목이다.반병희기자 bbhe424@donga.com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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