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출신의 할스트롬은 ‘개같은 내 인생’(1985)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토르나토레는 ‘시네마천국’(1988)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모두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들. 북구 출신의 할스트롬의 인간에 대한 시선이 따스한 반면, 지중해 출신의 토르나토레는 이보다 냉정한 편이다.
이런 차이 때문인지 할스트롬은 미국으로 건너가 인기감독의 반열에 선 반면 토르나토레는 이탈리아에 남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각각 ‘초콜릿’(Chocola)과 ‘말레나’(Malena)를 들고 찾아온 두 감독을 10, 11일 잇따라 만났다.>>
■<초콜릿>의 라세 할스트롬
할스트롬의 ‘초콜릿’은 1950년대 프랑스의 엄숙한 한 마을이 마야문명의 초콜릿 제조술을 물려받은 모녀의 방문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줄리엣 비노슈, 조니 뎁과 감독의 아내인 레나 올린이 출연했다.
―초콜릿에 대한 당신의 메시지는 뭔가.
“초콜릿은 거부할 수 없는 즐거움의 상징이다.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을 배척하기보다 관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레나 올린은 당신이 인간의 약점을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 관심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지닌 비밀스런 약점에서 보편적 인간조건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겐 작품의 주제보다 인물이 지닌 개성의 섬세한 묘사가 더 중요하다.”
―미국에서 성공했는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선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됐다. ‘초콜릿’만 해도 감독의 편집본을 잘라내는 것으로 유명한 미라맥스와의 두번째 작품이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길버트 그레이프’(1993)에 나란히 출연한뒤 스타가 된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후 행보가 대조적이다.
“조니 뎁은 ‘초콜릿’의 출연을 위해 다른 영화의 출연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직접 기타곡까지 준비하는 열의를 보였다. 반면 디카프리오는 ‘비치’의 출연을 위해 ‘사이더 하우스’를 포기했지만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곧 그와 다른 작품을 시작할 것이다.”
■<말레나>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토르나토레의 ‘말레나’는 2차대전 때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도덕적 엄숙주의의 위선을 그린 작품. ‘초콜릿’과 달리 아름답고 순결한 여성의 삶이 사회적 편견과 집단 폭력에 부서지는 비극을 13세 소년의 시각에 담아냈다.
―모니카 벨루치와 만남이 이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의는 11년전부터 들어왔지만 5,6년전 모니카 벨루치를 만날 때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녀를 본 순간 ‘바로 이 여자’라는 느낌이 왔다. 영화제작을 결심하는데 다시 5년이 걸렸지만 모니카는 전화를 받자마자 단숨에 달려와줬다.”
―‘말레나’는 당신 영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린 소년의 훔쳐보기로 영화가 전개되고 할리우드 고전 영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소년의 순수한 시선이 세상의 모순을 더 확실하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훔쳐보기나 옛 영화의 장면은 내 영화적 상상력의 근원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를 통해 정확히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도덕의 유치함이다. 마을 주민들은 도덕을 앞세워 자신들의 편견의 희생양이 된 말레나를 단죄한다. 그런 위선적 도덕관에 비해 오히려 그들이 손가락질하는 사춘기 소년의 성적 열망이 더 건강하다.”
―영화 편집과정에서 미국내 배급사인 미라맥스와 갈등설은 사실인가.
“당초 내가 찍은 분량은 2시간40분 가량이었지만 2시간을 넘으면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미라맥스와 계약서 때문에 분량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등급심의 문제로 배급사에서 성적 노출이 심한 장면의 삭제를 요구해 9분 분량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모든 편집은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베를린〓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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