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관계자는 12일 밤 회장단 고문단 연석회의에서 김각중(金珏中) 현회장을 재추대하는 결정을 내린 뒤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회장이 자신을 후임 회장으로 다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끝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
그룹 총수들로 이뤄진 18명의 부회장 가운데 후임 회장을 맡겠다는 자원자가 한명도 없어 김회장이 떠밀리듯 재추대된 데 대해서는 전경련 내에서도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손병두(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은 이달초부터 회장단과 원로들을 잇달아 만나 차기 회장감으로 누가 적합한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전문경영인 출신인 SK 손길승(孫吉丞) 회장이 한때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지만 “오너 위주로 운영돼온 전경련 전통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김회장을 다시 밀자는 쪽으로 중론이 모아졌다.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인 만큼 김각중 회장이 재계 원로와 후배들의 강권에 밀려 마지못해 나서는 모양새로 재추대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회장이 회의 개최 1시간전인 오후 5시30분경 회의에 불참할 뜻을 알려오면서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김회장을 설득할 심산으로 나왔던 상당수 참석자들은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회장단은 일단 김회장을 만장일치로 재추대하면서 “각종 위원회 활동을 더욱 활성화해 김회장을 충실하게 보좌하겠다”고 이례적으로 다짐했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회장직을 극구 사양한 것은 차기 회장이 후반기에 접어든 현 정권의 재벌개혁 공세에 맞서 재계를 대변해야 하는데다 다음 대통령 선거때 정치자금 등으로 시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 어쨌든 적임자를 찾지 못해 맡을 뜻이 없음을 거듭 밝힌 인물을 회장으로 추대한 것은 전경련의 현재 위상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회의에는 유창순 롯데제과 고문과 김준성 이수화학 회장, 송인상 효성 고문,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최종환 삼환기업 명예회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장치혁 고합 회장, 김석준 쌍용 회장, 박용오 두산 회장, 이준용 대림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등 13명이 참석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SK 손길승 회장 등 회장단 15명은 출장 또는 선약을 이유로 불참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