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부카드 '찬밥신세'…부가서비스 없어 시들

  • 입력 2001년 2월 13일 18시 38분


대기업에 근무하는 이모 과장(33)은 4년간 애용해온 모교카드를 버리고 항공마일리지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이과장이 모교카드를 주로 사용한 까닭은 따로 돈을 부담하지 않아도 카드 이용액과 비례해 기부금이 적립돼 모교에 전달된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카드사가 대신 모교에 기부금을 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카드를 잘 선택한 덕분에 공짜로 제주도 항공권을 얻었다든지 주말 놀이공원 가족나들이를 싸게 해결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 마음이 변했다. 순수한 애교심만으로는 모교카드를 지켜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용액의 일부를 기부금으로 적립해 해당 단체에 전달한다는 ‘기부카드’가 다양한 부가서비스로 무장한 ‘호화카드’에 밀려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어떤 카드는 가입만 해도 공짜 또는 할인서비스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대다수 기부카드는 사용액의 0.1%, 즉 이용액 1000원당 1원 정도의 ‘아주 작은’ 금액만 기부금으로 적립될 뿐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카드사가 발급하는 기부카드는 △동문회 △공익단체 △지자체 등 크게 3가지. 카드사별로 수십종씩 되지만 그나마 ‘체면’을 유지하는 기부카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기금이 적립되는 그린스카우트 국민카드의 경우 94년 도입 당해연도에 100억원의 기부금이 쌓인 데 이어 96년 130억원까지 연간 기부금이 늘어났지만 점차 줄어들어 지난해 67억원으로 위축됐다. 국내 신용카드 시장이 240조원 시장으로 급성장하고 상위권 카드사들이 수천억원대의 돈방석에 올라앉은 상황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모교카드와 지자체카드 가운데 가장 활성화됐다는 K대와 C도 역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BC카드의 K대 카드회원수는 96년 1만2200여명에서 지난해 5300여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C도는 97년 1만4300여명에서 지난해 7600여명까지 회원수가 떨어졌다.

이같은 기부카드의 쇠퇴는 남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세태 변화에 원인이 있다. 90년대초 기부카드가 첫 등장할 당시 카드사는 제휴방식을 통한 회원수 확대와 카드 활성화를 노렸다.그러나 90년대 중반 항공 정유 유통 등 본격적인 제휴카드가 잇따라 등장했지만 대다수 기부 카드는 이용액의 0.1% 정도만 기부금으로 적립할 뿐 회원에게 만족스러운 혜택을 베풀지 못했다. 기부금 적립외 다른 서비스를 추가하면 손해본다는 계산 때문. 한 관계자는 “기부카드가 너무 실속이 없다는 비판을 감안해 일반 카드에 기부 기능을 덧붙이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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