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회의는 맥빠진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재계를 대표하는 주요 그룹 회장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꼭 이날 회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건희 삼성, 손길승 SK, 유상부 포철 회장 등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해외출장을 떠났다.
준비된 좌석 수는 14개로 정원 29명 중 절반 이상이 불참한 셈. 김각중 회장이 자신을 재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난감해 하며 1시간 전 불참을 통보해 자리 하나가 더 비게 됐다. 관례에 따라 박수로 김 회장을 추대했지만 당사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전경련측은 “감기기운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전경련 회장은 재계를 대표해 기업 현장의 여론을 가감없이 정부에 전하고 정부의 합리적인 주문은 재계가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래서 ‘재계 총리’로 대접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 새 회장 추대 과정을 보면 재계는 스스로 전경련 회장을 더 이상 재계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어느 누구도 책임있게 나서지 않는 것은 물론 한사코 않겠다는 ‘대선배’의 등을 떠미는 ‘후배’들의 결정 역시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이 같은 ‘지리멸렬한 상황’에 대해 재계는 “기업만큼 시류변화에 민감한 집단도 드물다. 지난 3년간 재벌개혁 공세에 시달렸다. ‘강한 정부’를 내세우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누가 나서겠는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후반기에 바짝 엎드려 있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면서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면서도 정작 경제성장의 엔진인 기업을 옥죄고 기업인들을 걸핏하면 죄인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원재<경제부>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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