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증시투입]미국 '캘퍼스연금'…투자기업엔 깐깐한 주인노릇

  • 입력 2001년 2월 13일 18시 42분


미국의 레스토랑체인점업체인 론스타스테이크하우스앤드살롱은 작년 내내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CalPERS)의 등쌀에 시달렸다.

기껏 유동주식의 1.5%를 보유한 캘퍼스가 기업 경영에 꼬치꼬치 간섭해댔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에 안 들면 귀찮게 굴지말고 다른 기관들처럼 우리 주식을 팔아버리면 되지 않느냐”며 대들면 캘퍼스는 “우리는 단순한 주식 보유자(stock holder)가 아니라 회사의 주인(stake owner)”이라며 끈질기게 개혁을 요구했다.

▼글 싣는 순서▼

- 절차-투명성 문제있다
- 부양효과 얼마나
- 미국 '캘퍼스연금'의 경우
- 연기금 운용 어떻게

론스타는 견디다 못해 캘퍼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성적을 매년 평가하고 비상임이사로 구성된 인사위원회를 만드는 한편 이사들의 보상수준과 스톡옵션 비율을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양보에도 캘퍼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론스타는 마침내 올 들어 캘퍼스와의 대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캘퍼스는 자사 홈페이지의 ‘주주 포럼’에 ‘론스타의 대화 거부는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는 최근의 주가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경고문을 걸었다. 론스타의 주가는 45달러선을 유지하던 96년 초 이래 줄곧 내리막길을 타 최근에는 8달러선에 머물고 있다. 캘퍼스의 주주행동주의를 10년 남짓 보아온 월가는 론스타가 조만간 백기를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MD, 퍼스트유니언 등 미국 내 10개 상장기업이 작년부터 론스타와 똑같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중 5개 기업은 이미 손을 들었다. 캘퍼스는 1987년부터 매년 10여개 기업을 ‘집중감시 목록(focus list)’에 올린 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회사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기업지배구조와 회계투명성 등에 문제가 있는 기업이 감시 대상.

캘퍼스의 주주행동주의는 엄청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감시목록에 올랐던 62개 기업의 주가상승률은 목록에 오르기 전 5년 동안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미국 500개 상장 대기업들로 이뤄진 주가지수) 상승률보다 11% 낮았다. 하지만 캘퍼스의 행동개시 이후 5년간은 S&P500지수 상승률을 23%나 앞질렀다. 덕분에 캘퍼스는 1억5000만달러의 평가차익을 거뒀다.

캘퍼스의 기업감시활동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97년부터 ‘전세계 증시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마련해 투자기업 선별에 적용하고 있다. 주식보유량이 많은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시장에 대해선 별도의 ‘시장원칙’을 마련해 두기까지 했다.

캘퍼스의 이런 주주행동주의는 장기투자의 결과다. 적은 인력으로 2500개나 되는 주식에 투자하다 보니 시가총액비중에 따라 여러 종목을 골고루 편입해 장기보유하는 ‘인덱스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을 잘 알게 되고 나아가 주가 변화와 기업의 지배구조 및 경영방침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된 것.

96년 이후 5년간 연평균 12.6%로 전 세계 연금 중 최고의 수익률을 거둔 것은 이런 장기투자 원칙에 전략적인 자산운용 원칙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성공비결 제1조는 합리적이고 명확한 계획을 먼저 세운 뒤 움직인다는 것.

캘퍼스는 우선 기금 총수익률을 물가상승률과 연금가입자에 대한 지급계획 등의 제약조건에 맞게 정한다. 그 다음에 주식, 채권, 현금성 자산, 부동산 등 투자자산별로 목표지수와 목표치를 잡는다. 이는 적자 가능성을 사전봉쇄하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거두려는 단계.

합리적인 목표없이 정부와 여론의 이런 저런 눈치를 봐가며 무조건 ‘최고의 수익률’을 내세우는 국내 연기금과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국내 기업 및 증시 체질이 미국보다 장기투자에 불리한 것은 사실이나 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장기 재정추계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인 목표를 정해 장기투자를 한다면 단기투자를 할 때보다 훨씬 높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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