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퀴퀴한 지하실 냄새와 반찬 냄새가 섞인 채 빠지지 않았다. 지하교실과 주방이 한방에 연결돼 있기 때문. 아이들이 뛰놀 마당이 따로 없어 옥상에 간이 놀이터를 설치해 놓았는데 그나마 턱 높은 시멘트 계단을 4층이나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 떨어지지 않도록 난간을 아이들 가슴 높이 이상으로 해 놓고 밑바닥에도 타일을 깔았지만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데다 여기저기 철제 기둥도 설치돼 맘놓고 뛰놀기는 불안하다. 국기게양대 옆으로 하나둘씩 돌출된 철심들도 아슬아슬해 보인다. 어린이집 원장은 “양호실이 따로 없어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불안한 보육시설〓국내 영유아 보육시설의 안전관리가 시급하다. 경실련이 최근 서울시내 3976개의 보육시설과 1050개의 유치원을 살펴본 결과 11.09%는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3층 이상 건물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립유치원의 경우 25.9%가 3, 4층에 있었다.
또 위생이나 화재예방측면에서 불리한 지하공간을 보육시설로 사용하는 곳은 보육원의 3.01%, 유치원의 4.48%였다. 특히 지하공간의 경우 미세분진이나 중금속, 방사능 기체 등에 노출되기 쉬워 상대적으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는 유아들에게 호흡기 피부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6일 발표된 유엔아동기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아동사고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25.6명으로 이 비율은 스웨덴 5.2명, 영국 6.1명, 일본 8.4명 등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4∼5배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보육시설 이용 아동 8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16.0%가 본인 부주의와 관리감독 소홀 등의 이유로 안전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은 없나〓전문가들은 현재 유치원 시설에 대한 명확한 안전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초중등교육법에는 조명 소음 온도 냉난방 등에 대한 포괄적인 설치 기준만이 있을 뿐 구체적인 설치법령은 없다. 미국 모자보건국에는 아동보육시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세부적인 기준이 980여개나 있고 스웨덴은 실내의 설비, 물리적인 환경, 건물과 대지 등 세부항목별로 유아시설의 안전규범을 정해 놓았다.
서울대 이순형(李順亨·아동가족학)교수는 “일단 지상3층 이상과 지하층에 유아보육시설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아동안전특별법을 제정하고 어린이시설 설치법령에도 구체적인 안전조항을 삽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