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린스펀 증언은 FRB의 신속한 정책대응의지 시사"

  • 입력 2001년 2월 14일 17시 05분


그린스펀이 13일 의회에서 행한 연설은 시장보다는 정책에 대한 시사가 더욱 강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래에셋투신운용은 14일 그린스펀이 말하려 했던 것은 최근 정책결정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이에 대해 정책결정자들이 취해야할 입장이었다고 지적했다.

김경록 김일구 연구위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그린스펀의 발언과 암시는 앞으로 경제가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 금리인하는 조금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향후 경제가 과거와는 다른 패턴이기 때문에 연방은행은 경제변화에 아주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시각이 기본적이기는 하지만, 경제가 더 나빠진다면 즉각적으로 금리를 대폭 낮추는 조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미래에셋은 내다봤다.

다음은 보고서 전문.

간밤에 그린스펀이 의회에서 상반기 정책의 기조에 대한 연설을 했다. 미국의 연방은행은 1900년대 초 경제불안이 자주 발생하자 의회가 1913년 연방은행법을 제정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연방은행의 목적은 다소 보강되어, 현재는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과 잠재성장력의 향상에 기여하고, 실업률을 낮추고, 물가를 안정시키고, 그리고 장기금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간밤에 있었던 그린스펀의 의회증언(Testimony)은 의회가 연방은행에 부여한 이러한 목적을 연방은행이 충실히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의회에 보고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그린스펀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1.지난해 연말까지 나타났던 급격한 경기둔화 신호가 1월부터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2. 지난해 연말에 나타났던 급격한 경기둔화는 기업들이 재고조정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미국경제에 반드시 나쁜 신호는 아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자사제품의 수요를 파악하지 못했고, 공장과 판매점에 재고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요둔화가 나타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후 기업들이 생산조정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이 수요와 재고에 대한 파악 속도가 빨라졌고, 수요둔화와 동시에 기업의 생산조정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전히 불확실성은 많이 남아 있지만, 지난 연말의 급격한 생산둔화는 조정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3. 지난 연말 소비자들과 기업의 급격한 소비 및 구매둔화는 에너지 가격의 상승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의 에너지가격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소비 및 구매심리는 호전될 것이다(NAPM의 급격한 하락을 염두에 둔 듯).

4. 새로운 기술이 추동하는 미국의 장기적인 성장 전망은 여전히 밝다.

5. 현재의 조정이 마무리되면 경제는 회복되겠지만, 올해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경기는 둔화된 상태(substantial slowdown)이다. 올해 GDP는 2-2.5%정도가 중심축이 될 것이며, 실업률은 4/4분기에 지금보다 다소 높은 4.5%수준, 물가는 작년의 2.5%보다 낮은 1.75-2.25%가 중심축이 될 것이다.

그린스펀은 모든 것을 딱부러지게 분명하게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간밤에 있었던 증언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훨씬 더 심하게 보인다. 그린스펀의 증언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분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든 5가지 일반적인 요약이 그린스펀 증언의 본질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그린스펀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것은 최근 정책결정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이에 대해 정책결정자들이 취해야할 입장이었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와 핸드폰 수요에서 나타나듯이 정보통신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굉장히 불안정하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났다가 그 다음 순간 수요가 급격히 위축된다. 우리는 99년말 컴퓨터와 관련제품의 엄청난 수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관련부품의 재고가 완전히 바닥나는 현상을 2000년대 초에 겪었다. 기업들은 재고를 늘리기 위해 지난해 2/4분기부터 생산을 대폭 늘렸지만, 3/4분기 반짝 수요 이후 4/4분기에 정보통신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재고를 많이 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지난해 반도체 가격의 폭등과 급락의 반복 과정과 동일하다.

소비의 불확실성은 정보통신산업 제품의 수요 특성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주식시장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력이 현저하게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연방은행조차도 주가를 금리정책의 주요변수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99년말부터 2000년초, 2000년 중반의 소비급등은 분명히 주가상승 때문이었다. 주가상승은 소비자의 자산을 늘려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들어 주가의 소비결정력은 현저하게 높아졌다. 따라서 주가의 움직임에 통화정책이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구경제산업의 수요는 안정적이고,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주가도 안정적이었다. 구경제 제품의 사이클도 다소 분명했고, 주식시장의 급등락도 흔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책결정자들이 빨리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경제학 원론에 나와있듯이 정책결정자의 행동 자체가 경제에 불확실성을 낳고 위험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정보통신산업 제품 수요가 급등락하고 이에 따라 관련 기업들의 반응도 수시로 바뀌고 있는 상황, 그리고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가가 급등락하는 상황에서는 정책결정자들이 더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린스펀은 한 예로 98년 여름 LTCM문제때는 유동성이 급격히 위축되었던 경험을 말한다. 심지어는 국채 조차도 최근에 발행된 국채만을 사들이고 이전에 발행되었던 국채는 외면하는 극단적인 현상까지도 생겼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결정자들이 빠른 행동이 낳을 위험을 두려워했다면, 98년에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But even when decisionmakers are only somewhat more risk averse, a process of retrenchment can occur. Thus, although prospective long-term returns on new high-tech investment may change little, increased uncertainty can induce a higher discount of those returns and, hence, a reduced willingness to commit liquid resources to illiquid fixed investments."

그린스펀의 증언이 있고 난 후, 시장은 그 이전에 비해 더 좋아하거나 더 싫어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린스펀이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그는 시장과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중립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번 증언의 성격상 시장에 대해 뭐라뭐라 할 것도 없었다. 이번 증언은 연방은행(의회로부터 통화정책결정을 위임받은 대리인, Agent)이 향후 정책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의회(주인, Principal)에 보고하는 자리였다.

당장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은 "급격한 조정이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있다"는 지적과 "향후 금리인하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암시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발언과 암시는 앞으로 경제가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 금리인하는 조금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향후 경제가 과거와는 다른 패턴이기 때문에 연방은행은 경제변화에 아주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시각이 기본적이기는 하지만, 경제가 더 나빠진다면 즉각적으로 금리를 대폭 낮추는 조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린스펀의 증언에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시장보다는 정책당국이다. 90년대 그랬듯이 정책당국이 익숙해진 방식대로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그린스펀의 다음 발언은 정책당국이 한번 깊이 생각해볼만하다.

"Because the advanced supply-chain management and flexible manufacturing technologies may have quickened the pace of adjustment in production and incomes and correspondingly increased the stress on confidence, the Federal Reserve has seen the need to respond more aggressively than had been our wont in earlier decades. Economic policymaking could not, and should not, remain unaltered in the face of major changes in the speed of economic processes. Fortunately, the very advances in technology that have quickened economic adjustments have also enhanced our capacity for real-time surveillance."

채자영<동아닷컴기자>jayung20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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