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증시투입]연기금 운용 어떻게

  • 입력 2001년 2월 14일 18시 33분


정부는 93년 한국통신 주식 1730만여주를 국민연금에 떠안겼다. 최근 실패로 끝난 9차 한국통신 민영화 '대장정(大長征)'의 출발점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주식부문에서 한국통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99년초 절반에 가까운 49.9%(장부가 기준)에 이르렀다. 작년 9월말에는 시가평가를 적용한 덕분에 31.9%로 다소 낮아졌다.

▼글 싣는 순서▼

- 절차-투명성 문제있다
- 부양효과 얼마나
- 미국 '캘퍼스연금'의 경우
- 연기금 운용 어떻게

한국통신 비중과다는 국민연금 주식운용에 큰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물량을 털어낼 경우 주식시장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뻔해 마음대로 팔지 못한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99년 한해동안 한국통신 비중을 계속 줄여 연말에는 22%대로 낮췄다. 그러다가 작년 2월 한달간 한국통신 100만주를 다시 사들였다. 8월말 편입비율이 46%대로 다시 올라간 반면 주가는 급락해 한국통신 한 종목의 평가손실률이 54%를 넘었다.

최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펴낸 자체보고서조차 '한국통신은 주가변동성도 크고 보유규모(위험노출액)도 보유주식 시가총액의 30%를 넘어 절대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위험관리 측면에서 한국통신 주식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점진적으로 매도해야 한다'고 강도높게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통신 주식을 국민연금이 인수한 것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연금의 독자적인 운용을 방해해' 결과적으로 연금의 건전성을 멍들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때문에 정부가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연금을 동원할 때는 '연금이 중요한가 아니면 증시가 우선인가'를 먼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우선순위가 모호한 점은 작년 10월말 정부가 추진해 국민연금과 우체국기금이 주식전용펀드를 만들 때도 발생했다. 국민연금과 정보통신부는 처음에 운용능력이 뛰어난 투신운용사를 선정해 돈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경우 대신 삼성 조흥투신운용 등 6개사를 골라 3000억원을 나눠 맡겼다.

하지만 이후 증시 투입액이 커지면서 국민연금은 1차 선정된 운용사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에 추가 자금을 맡겼다. 증시보다 연금이 중요했다면 운용능력을 따지는 선정기준이 시종일관 적용됐어야 한다는 뒷말이 많았다. 결국 돈이 빠져나가 고전하고 있던 투신운용사만 골고루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과 정보통신부 등은 펀드운용의 세부내역 공표를 꺼린다. 우체국 기금의 경우 최근 "주식전용펀드의 이름과 수익률을 알려달라"고 하자 한 실무자가 "알아서 뭐하느냐. 언론에 보도되면 골치만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험료를 내는 국민들에게 떳떳하게 알리지 못하는 연기금운용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결과를 기다려주기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연기금 주식투자를 국내 증시에만 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내 증시용 연기금 투자'는 본말이 전도된 연금운용의 대표적인 행태라는 지적이다. 증권연구원 고광수박사는 "영국의 경우 연금자산중 주식투자분의 70, 80%를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며 "연금을 해외에 분산투자할 경우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의 중앙연금기금(CPF)은 정부의 해외투자기관인 GIC에 위탁해 해외간접투자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운용을 정부(국민연금관리공단)가 독점하는 것도 이번 기회에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단이 전권을 갖고 있을 경우 '연금은 쌈지돈'이라는 인식이 생겨 '외부의 이해'가 개입할 수 있고 수익률도 떨어지는게 일반적이라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 문형표연구위원은 "국내 4대 연금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어 재정고갈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며 "아무리 운용을 잘해도 이 한계를 넘을 수는 없지만 운용주체를 분산시켜 위험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네티즌 75%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 반대"

정부의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 방침에 대해 대부분 투자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정보사이트 씽크풀이 9일부터 5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네티즌의 75%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답변을 했다. 1061명이 참여한 이번 설문조사에서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네티즌은 24%인 255명에 불과했으며 '정책은 환영할만하지만 제대로 운용되리라 믿을 수 없다'는 답변이 38%로 가장 많았다. '국민의 돈을 낭비하는 정책이다'라는 설문 항목에 찬성표를 던진 네티즌도 37%에 이르렀으며 1%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다.

이와 관련,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정부는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라는 직접 처방보다는 유동성 공급의 해결책으로 일관해오고 있다"면서 "이번 발표 역시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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