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닫힌 가슴 닫힌 '미래'

  • 입력 2001년 2월 14일 18시 39분


“우리는 (논의과정에) 그쪽 사람을 끼워주는데 그쪽은 아예 우리를 무시해요.”

5일부터 13일까지 연재된 심층리포트 ‘표류하는 영유아교육’의 취재과정에서 만난 교육인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특히 ‘유아교육개혁의 표류’와 관련돼 양 부처는 ‘남의 탓’만 하며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럿 다쳤어요. 잘못 말하면 매장돼요.”

관련법안의 제정에 찬성하는 유아교육학계와 이에 반대하는 보육학계의 학자들은 이 문제에 공개적으로 입장 밝히기를 주저했다. 누구는 소신껏 말하다 쫓겨났다느니, 상대편이 투서 등 온갖 인신공격을 다한다느니…. 정상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횡행했다.

심지어 한 연구자는 “이 ‘밥그릇싸움’에 잘못 끼어들었다간 기자도 다치니 아예 다루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감정의 골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이런 식으로 계속된 헐뜯기 속에서도 두 부처와 두 학계가 목표로 하는 ‘취학 전 아이들의 미래’는 놀랄 만큼 똑같았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유아교육발전추진위원회가 제시한 유아정책의 목표나 보건복지부의 보육발전위원회 및 기획단의 향후 추진목표가 서로 베낀 것처럼 비슷했던 것. ‘취학 전 1년 무상교육’ ‘영유아 보육 및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 등이 그랬다.

양측 관계자들은 이 같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상대방이 베낀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치열한 공방의 경위와 내용를 떠올리면 어이없는 일이다.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오래 전에 끝났을 논쟁”이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전망 없는 미래’는 이들의 부모세대가 아직껏 풀어헤치지 못하고 있는 ‘닫힌 가슴’ 때문이라는 생각을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지울 수 없었다.

이헌진<기획취재팀>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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