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졸자 갈 곳이 없다

  • 입력 2001년 2월 14일 18시 57분


졸업 시즌을 맞은 대학가가 전반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다. 전국 4년제 대학에서 23만5000여명의 졸업생이 대학문을 나서지만 일자리를 잡지 못한 대졸자가 태반이다.

최근 대졸 신입사원 10명을 모집한 한 중견기업에 4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어 서류전형이 예정보다 일주일이나 늦어졌다는 소식은 대졸자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년 말부터 기업들은 감원 등 구조조정에 바쁜 데다 경기가 급격히 냉각돼 새해 들어 신입사원을 뽑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경제위기 이후의 취업 재수생 17만명이 취업경쟁에 합류해 4년제 대졸자들의 취업문은 더없이 좁기만 하다.

경제위기 직후인 98년 50.5%이던 대졸자 취업률은 작년 56%로 높아졌으나 올해에는 다시 반전돼 4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특히 지방대 출신과 여성 대졸자들의 취업난이 극심해 많은 졸업생들이 정규직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나서는 딱한 실정이다.

기업들이 당장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사원과 전문대 기능대 졸업자들을 선호하는 추세도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률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상 최고의 취업난 속에서도 100%의 취업률을 자랑하는 전문대들이 많다.

4년제 대학들이 경제사회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공급자 위주의 인력 양성을 계속해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교육인적자원부는 산업현장의 수요에 맞추어 교육 내용을 개편하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보통신 생명공학 환경 문화관광산업 등 신산업 분야의 일자리 창출력이 갈수록 커지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심각한 대졸 취업난을 타개하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인턴사원 지원예산을 확충할 필요가 있으나 지금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인턴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에 1인당 월 50만원을 지원하는 예산이 작년에는 5만6000명에서 올해 1만8000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고용보험 미적용자를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 예산도 줄었다.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간 고급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다. 더욱이 사회에 첫발을 실업자로 내딛는 대졸자들은 정신적 낙인이 평생을 따라다닐 수도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 각계가 일자리 없이 대학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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