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대우채 환매연기 무효판결 의미와 파장

  • 입력 2001년 2월 14일 19시 04분


99년 8월 대우 사태 당시 대우채 편입 수익증권의 환매를 연기한 금융감독위원회의 조치는 효력이 없다는 법원의 14일 판결은 증권업계에 적잖은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번 판결로 비슷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이 크다.

당시 금융기관에 돈이 묶였던 투자자들의 피해내용이 대부분 엇비슷해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해당 증권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증권사들은 ‘금감위 조치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며 금감위를 상대로 송사를 벌일 수도 있다. 연쇄 소송대란의 우려마저 있는 것.

하지만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사태전개를 점치기 힘들다. 먼저 금감위측이 “법원이 증권투자신탁법 구법과 신법의 적용 대상을 혼동해 빚어진 오류”라며 즉각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소송 당사자인 D증권 역시 “법률검토를 마치는 대로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D증권 법무팀 변호사는 “유사한 소송에서 다른 증권사는 승소한 판례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법 민사합의 13부는 작년 11월 G사가 S증권을 상대로 낸 비슷한 내용의 소송에서 ‘금감위 조치는 유효한 만큼 원고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판결은 금융시장을 주무르던 금감위의 관치관행에 제동을 건 셈. 법원 판결은 “금융기관과 투자자 사이의 거래에 금감위가 개입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금감위의 권한 범위에 일정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금감위가 당시 환매 연기조치를 내린 것은 한꺼번에 환매요구가 몰릴 경우 증권업계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이어 증시와 회사채시장이 동반 몰락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금감위 개입이 없었다면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 사실 당시 금감위 개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우채 투자자였다. 반면 이로 인해 공적자금 투입요인이 추가발생, 일반 국민이 부담을 대신 진 셈. 이렇게 보면 투자자들의 피해보상요구는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아라’는 식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이번 판결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약관의 효력에 대한 부분이다. 당시 Y사에 판매됐던 수익증권 약관에는 ‘환매청구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청구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이를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됐다.

Y사가 99년 8월 4일 환매 요청을 했지만 환매 연기조치가 내려진 12일까지 환매를 받지 못했던 것도 이 약관에 준한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원고에게 약관을 보여 주거나 중요 내용을 설명해준 적이 없으므로 약관의 효력은 없다”고 판시해 증권사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봤다.

당시 금감위 조치로 환매가 제한됐던 대우 유가증권은 무보증 무담보 회사채 13조여원과 기업어음(CP) 5조여원 등 모두 18조8000억여원으로 전체 수익증권 잔액의 7%에 이르렀다. 당시 계좌수가 1200만 계좌여서 일제히 유사한 소송이 제기되면 사상 최대 규모의 손배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