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회장 양승규)는 15일 지난해말 의문사규명위에 행방불명자로 처리된 노동운동가 박태순씨(36·사진)의 사망사실과 함께 유골 안치장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의문사규명위는 "지난 92년 8월 29일 경기 시흥 소재 친형집으로 귀가하던중 구로역 인근에서 행방불명된 박씨(당시 26세)가 행려사망자로 분류돼 경기 벽제리 묘지에 가매장됐다가 경기 광탄면 용미리 1묘지내 무연고 추모의 집에 유골이 안치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의문사규명위 조사팀은 서울 구로구청에서 박씨가 행방불명된 날짜 전후에 발생한 행려사망자 212명 중 박씨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6명을 뽑아 신원확인 작업을 벌여왔고 실종 당일 오후 9시 55분경 구로구 시흥1동 경부 하행선 선로상에서 발생한 신원미상의 변사사건이 박씨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사팀은 이어 서울 남부경찰서 과학수사반에서 당시 사건기록 사본을 제출받아 변사자의 열손가락 지문과 박씨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지문을 대조해 같은 사람으로 판단하고 이 변사자의 지문을 경찰청 과학수사과 지문계 주민반에 의뢰, 역시 동일인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이후 조사팀은 사체를 찾기 위해 서울 남부경찰서 등 해당관청에 문의, 박씨가 지난 92년 8월 29일 오후 9시 55분쯤 시흥1동 경부하행선 서울기점 17.1km 선로에서 열차사고로 사망한 행려사망자로 분류됐으며 이후 구로구청과 서울 장묘사업소를 거쳐 그해 10월 경기도 벽제리 묘지에 가매장됐다가 98년 4월 화장돼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에 유골이 안치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의문사규명위의 통보를 받은 박씨의 형 영순씨는 동생의 죽음을 확인하고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영순씨는 “동생이 행방불명됐지만 실낱 같은 생존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며 “동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오열했다.
영순씨는 또 "시신을 발견할 당시 경찰이 지문 채취까지 했다는데 이제서야 신원이 확인됐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의문사규명위 등과 함께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씨가 행방불명된 뒤 박씨 가족은 당시 모일간지에 실종광고를 게재했고, 93년에는 모시사잡지에 박씨의 실종을 기획기사로 싣는 등의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 가족은 박씨를 찾기 위해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도 긴밀하게 연락을 취해왔다.
의문사규명위는 앞으로 유족과 함께 유골안치장소를 확인하고 박씨의 의문스런 행려사망 처리 경위와 위법한 공권력의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계속키로 했다.
의문사규명위의 관계자는 "의문사규명위 조사결과 공권력 개입여부가 드러나면 관련자의 사법처리를 의뢰할 것”이라며 " 이번 조사로 어떤 형태의 의문사라도 함께 노력하면 진실을 밝혀낼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85년 한신대 철학과에 입학해 운동써클에 가입, 민주화운동을 했고 지난 87년부터 수원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수감, 지난 91년 출소후에도 골판지생산공장 노동자로서 노동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병무청 소집영장을 피한 관계로 당국의 추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병률/ 동아닷컴 기자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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