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 것 중엔 건강도 포함된다. 정신적 긴장도가 높아지면 우리 몸은 쉬이 지치게 마련이고 심하면 몸을 해칠 수도 있다. 이렇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적 증상으로 발현되고 이런 신체 증상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화하는 것을 한의학에서는 ‘심신증’(心身症)이라고 일컫는다. 그중에서도 아무런 이유없이 가슴이 뛰는 증상이 ‘정충’( )이다. 이는 심신증 중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라 할 수 있다.
가슴이 뛰는 것을 한의학에서는 ‘심계’(心悸) 혹은 ‘동계’(動悸)라고 하는데, 동계는 일종의 비정상적인 맥박 형태로서 심장 박동의 크기나 박동수 등의 이상 소견으로 진단할 수 있다. 동계는 경계(驚悸)와 정충으로 구분된다. 경계는 정서적 자극이나 놀람, 과로 등으로 인해 간헐적으로 발작하는 것이 보통. 발작하지 않을 때는 정상인과 거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정충은 하루종일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며 피로가 심할 때는 발작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등 중병인 상태를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경계가 지속되면 정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즉 경계는 매사에 잘 놀라고 그때마다 심장의 고동이 높아지는 것이고 정충은 증상과 관계없이 수시로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이다.
◇심장과 담이 허약할 때 ‘요주의’
좀더 자세히 말하면, 경계는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주증상을 동반하지만 심장 박동 자체가 빨라지진 않는다. 이는 우리 몸의 으뜸 장기인 심(心)과 결단을 주관하는 담(膽)의 장기가 허약해졌을 때 주로 나타난다. 반면 정충의 경우 특별한 이유없이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안정을 취해도 잘 가라앉지 않는다. 생각을 많이 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오래 가슴 속에 담아둘 때 정충이 생기기 쉽다. 정신적 압박감이 몸의 생기와 혈액을 손상해 심장의 혈액대사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의 원인을 정신활동이나 감정과 관련이 있는 칠정(七情)의 변화와 인체 생명활동의 기본 에너지원인 심혈(心血)의 부족,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기운인 심양(心陽)의 부족, 인체의 생기와 혈액인 기혈(氣血) 순환의 장애를 부르는 담화(痰火) 등에서 찾는다.
가슴을 고동치게 하는 구체적인 질환 몇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심기허증을 들 수 있다. 심기허증(心氣虛症)은 몸이 몹시 허약하거나 병을 오래 앓고 난 뒤 심기가 부족해 나타난다. 그리고 본래 양기가 부족하여 심장의 기혈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심양허증(心陽虛症)도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대표적 질환이다. 그 외에도 지나친 출혈이나 몸이 허약해서 생기는 음허증(陰虛症)과 스트레스나 불규칙하고 무절제한 식습관 때문에 생기는 담화(痰火)도 주요 요인이다. 또 타박상과 같은 외상으로 인해 피가 뭉치는 어혈증(瘀血症)도 가슴을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이다.
그러나 증상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를 수 있으며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만 증상이 호전된다. 즉 가슴 두근거림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장기 기능의 편차 때문에 일어나는 만큼 육체적 허약과 정신적인 긴장상태를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슴 두근거림에 시달릴 경우 무엇보다도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규칙적인 식생활을 유지하고 급격한 온도차를 피하는 것이 좋다. 극렬한 운동 또한 절대 금물. 만약 이런 방법으로도 증상이 누그러지지 않는다면 치료를 제때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슴 두근거림의 원인을 각 증상별로 간별하되 약물치료를 기본으로, 침구요법이나 향기요법 등을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한방 치료의 기본이다.
< 이성환/ 자생한방병원 제2내과장 www.jaseng.co.kr >
(주간동아 2001.2.22일자 제2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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