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해안선은 길이가 얼마나 될까? 지리부도에 숫자가 나와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답은 ‘무한대’다.
지도에 나타난 해안선을 일일이 자로 재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길이가 나온다. 그러나 훨씬 정밀한 지도를 사용하면 사소한 굴곡까지 드러나고, 숫자에 넣어야 할 길이는 훨씬 늘어난다. 종내는 바닷물을 적시며 뒹구는 조약돌의 둘레까지 계산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 표면 또한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수없는 굴곡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과학’은 언제나 TV 퀴즈 프로의 가장 중요한 메뉴다. 화학식이나 염색체 수를 놓고 점수와 상품이 오간다. 그러나 이 책은 과학이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님을, 오히려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고도의 지적 게임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이론과 사실로 알기 쉽게 보여준다.
과학 칼럼니스트로 여러 매체에서 활동 중인 저자가 그동안 연재한 칼럼 중에서 27개의 주제를 엄선했다.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을 통해 저자는 새로운 과학적 지평이 가져다주는 사유의 게임에 독자가 동참하고 함께 이를 즐기도록 인도한다.
기사 서두에 제시한 ‘프랙탈 기하학’도 그 중의 한 예. 무한과 혼돈을 표현해 주는 프랙탈 기하학은 자연의 본질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이해하게 해주고, 지질학에서 생리학에 이르기 까지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과학으로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 ‘성(性)’도 빠지지 않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왜 동물의 암컷과 달리 인간의 여성에게서는 배란기 현상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아비 재택 이론’(Father―at―Home Theory)과 ‘아비 다수 이론’(Many―Fathers Theory)라는 두 가지 상반된 추리를 내놓았다.
전자의 ‘아빠는 집에’ 이론에서 아내는 남편이 바람 피우지 못하게 하려고 ‘언제 임신할 수 있는지’ 감추게 된다. 남편은 확실한 자기의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해 가정에 충실하게 되고, 이는 종족 번식에도 이득이 된다.
반면 후자의 ‘누가 아빠지?’ 이론에서 여성은 임신할 수 있는 기간을 감춤으로서 여러 수컷이 헷갈리게 만든다. 아기가 생기면 수컷들이 ‘자기 아이일지도 모르므로’ 해꼬지를 안하니 번식에 유리했다는 것.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둘 다 옳다. 단지 인류 역사의 각각 다른 시기를 설명할 뿐”이라는 게 책의 결론이다.
저자가 크게 빛이 나지도 않는 과학 칼럼 집필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장에 생각의 일단이 드러난다. 그는 ‘신과학’으로 포장된 반과학주의의 확장을 경계하면서 과학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겸비한 저술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