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7년의 환란이후 경제가 본격 회복 여부의 중대 기로에 섰던 작년초 정치권, 특히 여당이 4·13총선을 앞두고 경제 부처에 반개혁적인 주문을 쏟아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투신 부실 해소, 은행권 구조조정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 계획 등 고통이 수반되는 화급한 현안들이 정치권의 요청에 따라 총선 뒤로 미뤄졌고 근로자 표를 의식해 개혁 법안들이 국회에서 무더기로 비토됐던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정치권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 환란이후 한껏 고조됐던 사회의 긴장 분위기는 이완됐고 이제서 뒤늦게 개혁을 재시도하다 보니 사회적 갈등은 더 깊어지고 국민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게 됐다. 경제가 곤두박질하는 와중에도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각종 법안 심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그 화급한 상황에서도 예산 심의가 표류해 “열흘동안 정부과천청사에 가지도 못했다”는 진부총리의 말은 정치권이 정쟁을 위해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경제 문제들을 얼마나 쉽게 뒤로 돌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다. 정치권의 정쟁이 경제 회복 지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면 그것은 정치의 근본 목적이 실종됐음을 의미한다.
진부총리는 비록 과거지사만을 언급했지만 과연 지금은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지배하는 일이 없는지도 의문이다. 대우 처리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는 현대 사태 처리라든지 대량 실업이 유발되는 공기업이나 은행 구조조정에서 고용 보장을 강조하는 정부의 자세에 정치적 이해타산이 완벽하게 배제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물론 경제정책 집행의 제1차 책임은 정부, 특히 경제 부처에 있다. 따라서 경제 관료들이 뻔히 잘못될 것을 알면서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정부가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차제에 정치권과 경제 부처는 함께 반성해야 한다.
정치 논리에 희생된 경제정책의 폐해를 경제팀의 수장이 공개적으로 시인한 이상 정치권과 행정부 모두는 이제부터라도 경제 문제에서 만큼은 정치권의 이기주의가 발동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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