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는 음악의 역사와도 걸음을 같이한다. 암호란 바로 ‘텍스트의 변조와 해독’인 만큼 문자가 아닌 음표의 텍스트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음계의 자연음 일곱 개는 ‘도레미파솔라시’‘cdefgab’라는 두 가지의 문자열과 나란히 대응된다. 고금의 작곡가들이 이를 토대로 지적 유희를 즐겨보고픈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우선 작곡가 스스로 해답을 밝혔거나 쉽게 해독될 수 있는 암호도 손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조스캥 데 프레는 ‘라샤파레미’(이탈리아어로 ‘나를 내버려 두세요’)라는 종교적 텍스트에 곡을 붙였다. 멜로디를 계이름으로 읽으면 ‘라솔파레미’가 된다.
슈만(사진)은 피아노곡 ‘사육제’에서 A,E플랫,C,B라는 네 개의 음을 주요 동기로 사용했다. E플랫은 독일식 표기로 Es가 되고, B음은 독일식으로 H다. 네 음을 붙여 읽으면 Aesch다. 슈만이 이 곡을 쓸 무렵 사랑했던 소녀가 ‘아슈(Asch)’라는 이름의 거리에 살았다.
반드시 문자로 치환할 수 있는 암호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선배 작곡가들이 사용한 음악적 동기를 자기의 작품 속에 숨겨넣는 방법도 종종 이용됐다. 엘가는 만년에 야심적으로 작곡한 변주곡 제목을 ‘수수께끼’라고 붙였다. 이 제목은 일종의 중의법이었다.
첫째, 친한 사람들의 성격을 개개의 변주로 묘사했다. 둘째, 누구나 아는 유명한 선율 하나를 변형시켜 작품 어딘가에 숨겨 넣었다. 작곡가는 첫 번째 비밀은 밝혔지만 두 번째 비밀, 즉 어떤 유명한 선율을 어떻게 암호화해 숨겼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뛰어난 음악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달려들었지만 비밀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앞에 든 사례들은 작곡가들이 ‘암호를 숨겼다’고 공표한 예다. 그러나 작곡가가 자신의 은밀한 메시지를 악보 행간에 숨겨놓고 끝까지 비밀을 간직했을 수도 있다. 일례로 작곡가가 사모하던 피아니스트에게 소나타를 헌정하면서 “왼손 약지손가락이 따라가는 음을 글자로 써보세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들어있습니다”라고 비밀 편지를 동봉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이 그 은밀한 메시지를 공표하지 않았다면 이는 영원히 음악사 속에 숨은 비밀이 될 것이다. 모든 작곡가들의 작품을 ‘이런저런 암호가 숨어있지 않은지’ 일일이 해독해볼 수도 없는 일이니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