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헤어짐의 철학

  • 입력 2001년 2월 18일 18시 25분


김영삼(金泳三·YS)정부 초기의 일이다. 개각 때면 상당수의 장관들이 자신이 경질됐다는 사실을 방송을 통해 알았다.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장관은 자동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뉴스로 자신의 경질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정권에 가장 적대적인 사람은 아마도 퇴임 장관들일 것’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헤어지는 모양이 삭막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YS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 민자당대표였던 김종필(金鍾 泌·JP)자민련 명예총재와도 껄끄러운 결별을 했다. 이번에 나온 YS회고록에는 두 사람과의 결별장면이 나온다. 이총재의 경우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해 해임조치했다고 했고, JP의 경우는 오해가 있었다고 적었다. 회고록의 내용에 대해 이총재측은 ‘가당찮은 일’이라고 말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들 두 사람과의 아름답지 못한 헤어짐은 YS정권이 크게 어려워지는 계기가 됐다.

▷정권이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모두 마찬가지다. 사람을 떠나보낼 때는 그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경험자들의 얘기다.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해 이해를 구하고 직장을 떠나는 경우는 새 직장까지도 함께 알아보는 등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까지 갈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주변에는 비서나 아랫사람이 자리를 떠나면서 모셨던 사람을 배신하는 경우가 오죽 많은가.

▷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직장을 떠나고 있다. 불만 속에서 자리를 떠나는 사람의 언행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회사에 대한 험담이 기업이미지를 크게 훼손하고, 이는 남아있는 직원들의 사기저하로도 이어진다. 보안도 문제다. 회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람관리’, 그것도 떠나는 퇴직자의 관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헤어지면서도 서로 미움이나 원한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사에서는 어떻게 만나느냐 보다 어떻게 헤어지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 같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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