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제대로 된 행정이라면

  • 입력 2001년 2월 18일 18시 32분


중학교를 수석 졸업한 김모양(15)이 울산에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고교에 배정받자 고교등록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사연(본보 14일자 A29면)이 보도된 이후 우리의 교육행정을 질타하는 독자들의 의견이 E메일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기자는 김양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하면서 우리의 교육행정기관이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공무원 편의 위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김양의 사연이 보도된 뒤 울산시교육청의 한 간부는 “주위에서 가만히 있었으면 김양이 고등학교에 등록했을 것”이라며 언론과 김양 주변 사람들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제기됐던 원거리 배정 학생들의 맞교환 방안에 대해 입안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관련 규정이 없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녀를 미국에 유학보냈다는 한 독자는 E메일을 통해 모든 것을 학생 입장에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미국 교육행정의 사례를 소개했다.

딸을 주소지 관할 초등학교가 아닌 이모집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더니 해당 학교측이 “학군이 이곳이 아닌데 왜 이곳에 입학시키려 하느냐”고 문의해 왔다는 것. “이모가 보살펴야 하고 언니가 인근 중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동생을 학교까지 바래다 줄 수 있다”고 설명하자 선뜻 예외 규정을 적용해 입학 허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독자는 “미국에서는 틀에 박힌 규정 때문에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예외 규정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었다”며 “우리의 교육행정가들도 어떤 것이 학생을 위한 것인지를 발로 뛰며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 딸이 차라리 공부를 못해 고교 진학을 못했으면 이렇게 가슴 아프지 않았을 겁니다.”

김양 부모의 한탄이다. 이 나라의 교육행정가들이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이같은 한탄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게 될 것이다.

<정재락기자>jr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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