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부문 개혁]금융 '소프트웨어 수술'이 없다

  • 입력 2001년 2월 18일 18시 43분


《금융감독위원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융구조조정 성과를 묻는 질문에 “너무 많이 해서 욕을 먹었다”고 자평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한 금융구조조정은 이해 득실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던 사안. 정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줄기차게 제도개혁을 추진해왔고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내실이 그만큼 건전해졌다고는 말하기 힘든 실정. 강도높은 퇴출과 짝짓기로 금융기관의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금융기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수익성 부문’의 성과가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동성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 성격의 정책들이 양산되면서 “구조조정이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아 시장으로부터의 신뢰 회복은 아직 요원하다.》

▼응급처방많아 정책신뢰흠집▼

▽하드웨어 개혁과 소프트웨어 개혁〓지난해 9월 금감위는 제2단계 금융구조조정 기본방향을 발표했다. 금감위는 1단계 금융구조조정의 성과를 바탕으로 △잠재부실 요인의 조기 정리를 통한 건전성 회복 △부실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과 소프트웨어 개혁을 통한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기반 구축 등의 목표를 내걸었다.

98년 4월부터 추진된 1단계 금융구조조정을 통해 97년말 현재 33개였던 은행이 22개로, 종금사는 30개에서 9개로 각각 줄어드는 등 부실 금융기관의 대대적인 퇴출 작업이 진행됐다. 또 지난해말 한빛 평화 광주 경남 은행을 묶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안이 확정됐고 국민과 주택은행의 합병도 성사됐다. 이에 대해 한국딜로이트컨설팅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은행 대형화 정책으로 만들어진 한빛은행은 합병 후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통합된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주택이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1. 4대부문 개혁의 성과와 한계
2. 기업개혁의 현주소
3. 금융개혁의 현주소
4. 공공(公共)개혁 및 노동개혁의 현주소
5. 전문가들은 이렇게 본다

한편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기 위해 기업 대출을 기피, 자금시장이 극도로 악화됐다. 여기다 돈이 안전한 은행으로 몰리면서 투신권 수신고가 99년말 260조원에서 1월 현재 140조원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같은 편법이 나왔다. 이 조치는 현재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에 휩싸인 상태. 99년 8월의 대우그룹 회사채 편입펀드 상환연기조치 역시 당국의 ‘미봉책 선호 성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사례다.

▼6개은행 부실 아직 18조원▼

또한 자본건전성 중심의 구조조정에 치중한 나머지 금융기관의 경영 건전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구조조정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도 지난해말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2조원 규모를 정리했을 뿐 아직 6개은행에 18조원 규모의 고정이하 여신이 남아있는 상태. 공적자금이 들어간 한국, 대한투신도 여전히 기관투자가로서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1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한생명의 매각 작업도 순탄치 않다.

▽금융감독의 선진화〓정부는 금융감독정책을 과거 ‘관치’에서 ‘시장 친화적’으로 바꾸기로 하고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적기시정조치나 공적자금 투입 및 책임 규명에 국한하고 감독 정책은 투명하고 명백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예측가능한 신뢰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 이를 위해 각종 규제를 없애고 권한을 분산시키는 등의 금감위, 금감원 조직 개편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제일은행의 ‘항명’파동에서 보았듯이 감독 당국의 말과 행동에는 여전히 큰 괴리가 있다.

실질적인 금융개혁은 당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은행 이사회의 활성화, 산은 회사채인수제도나 한국부동산신탁 처리 등에 대한 금융기관별 다양한 목소리 내기, 은행에 이익을 주는 고객을 더 대우하는 고객차별화 등이 변화의 실례들.

한국개발연구원(KDI) 신인석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이 공기업의 외피를 벗고 스스로 장사꾼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이야말로 금융개혁의 구체적인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금융산업 전체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개별 은행의 정책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다수 은행이 정부 소유라는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에 정부의 의지에서 자유롭지 못해 이 변화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현실이다.

<이훈·이나연기자>dreamland@donga.com

금융구조조정 현황(단위:개)
기관97년말2000년
8월말
비 고
은행3322인가취소5, 합병(12→6)
종금309인가취소18, 합병3, 영업정지3
증권3643인가취소6, 신규진입13
투신3127인가취소6, 합병1, 신설3, 증권사 전환 및 운용사 분리5
보험5040계약이전5, 합병1, 매각5, 영업양수도 및 자진철수2, 신설3
금고231164인가취소43, 합병19, 제3자매각16, 계약이전받은 신설 11
신협16661335인가취소2, 합병101, 해산97, 파산140, 신설9
리스2518퇴출9, 채무조정6, 신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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