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인석/부도판단 은행에 맡겨라

  • 입력 2001년 2월 19일 18시 55분


최근의 세 가지 사건에 주목한다. 첫번째는 대우그룹의 분식회계에 대한 검찰의 대응이다. 당시 경영진이 전격 구속됐는데 이는 회계장부 조작과 관련해 최초로 경영진이 단죄되는 사건이다.

▼분식회계 처벌 당연한 일▼

다음은 동아건설을 실사한 회계법인이 청산의견을 제시한 사건이다. 알고 보면 우리의 회계조작도 만만치 않다는 동아건설의 고백으로 엉뚱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으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대기업에 대해 회계법인이 문닫고 빚잔치를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는 점만으로도 과거 유례가 없는 신선한 사건이다. 마지막으로는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대우자동차에서 단행된 정리해고 사건이다. 노조의 반발에 따른 결말의 불확실성이 없지 않지만,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실시된 것은 일단 상징적 의미가 심장한 사건이다.

이들 사건을 한목에 거론하는 이유는 법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의 능력이 숙성된다는 희망을 제공하는 점이 공통되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은 부실 정도의 판단, 구조조정 방식의 선택, 구조조정의 추진이라는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부실 정도의 판단에서 회계정보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부실기업에서는 경영진의 회계조작 유인이 급격히 강해진다는 것이 문제다. 상식적이지만 이 유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회계조작이 드러날 경우 관련자 모두를 엄벌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분식회계와 관련해 경영진을 구속한 사건은 이 상식이 비로소 법적 관행으로 정립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한편 구조조정 방식의 선택에서 그동안 불만스러웠던 점은 우리 사회에는 대안이 없는 부실기업은 청산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의 전제가 미흡했다는 사실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당연히 해당 기업의 종사자에게는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다. 이에 요구되는 것이 사회안전망 차원의 배려이기도 하지만, 이 고통이 소모적인 대립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보다 중요한 것은 ‘대안이 없으면 청산’이라는 냉정한 지혜를 사회화하는 일이다. 동아건설에 대한 청산 논의가 희망을 주는 까닭은 이 지혜의 사회화에 진일보가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구조조정의 핵심은 과연 선택된 방식에 의해 자산조정과 인원조정이 진행되고 있는가의 여부다. 또한 사실 워크아웃, 법정관리 및 회사채 신속인수 중 어디에 속해 있든 우리 경제의 부실기업은 이제 웬만큼 드러났으며, 이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의 단행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법정관리가 신청돼 있는 대우차의 정리해고 추진은 최소한 법의 규율에 의한 구조조정은 작동하고 있다는 징후로 읽혀져 고무적인 것이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은 일단 채권단이 시도할 수 있는 것이고, 정부가 조정자를 자임하는 예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재량적인 구조조정이 여의치 않다면 법으로 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고, 위의 세 사건은 우리 사회가 법에 의한 구조조정을 진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소중하다.

▼부도판단 금융기관에 맡겨야▼

때마침 정부는 시장자율에 의한 상시 구조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다음의 세 가지 의미이기를 기대한다. 먼저 앞에서 설명한 희망의 이유들을 신뢰하며 법에 의한 구조조정의 역할을 넓혀가겠다는 뜻이기를 바란다. 부실기업이면 부도가 나고 법이 규율하는 바에 따라 청산과 회생여부가 결정되면서, 경영진의 범법행위 여부가 조사되는 것이 정상이다. 둘째, 이를 위해 금융기관은 부도를 낼 수 있는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기를 기대한다. 셋째, 회사채 신속인수로 연명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현 체제에 의한 구조조정 유도가 여의치 않으면 역시 법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를 바란다.

춘설이 과해도 봄에 대한 기대를 해치지 못하는 이유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신념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경제 부실이 심해도 구조조정의 진전이 계절의 변화처럼 신뢰될 수 있다면 심리위축에 의한 경기침체는 없을 것이다. 이런 규칙성 있는 경제의 건설이 우리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임을 되새기고 싶다.

신인석(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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