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북한 지도층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은 그것이 공산주의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결과라며 힘겨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국 북한 정권은 살아 남았지만 정치적 경직성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많은 논의에서 핵심 주제는 북한이 변하고 있는가, 변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변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북한 정권은 고전적 표현을 빌리자면 적응하거나 사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또 적응하려는 욕구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점에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개혁이란 용어를 꺼리는 듯하지만 지난 몇 년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북한은 1998년 헌법 개정에 이어 빈사 상태의 산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다음 대상은 중앙집중적인 배급 체제의 실패를 고려한 상업부문의 구조조정이었다.
북한의 정치 상황 변화에 대해 가정하는 것은 충분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지도층 내에서 격렬한 이념논쟁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당면한 많은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일종의 페레스트로이카가 필요함을 강조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북한 정권이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은 남아 있다. 지배 계층의 정치적 통제력을 유지하고 북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외교적 개방을 추진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이 있는가?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 자유화가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이에 따라 공산주의의 권력 독점이 종식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한 한국 학자는 남한이 없었다면 북한이 중국보다 먼저 개혁 정책에 착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날카로운 지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북한의 개혁 노력이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은 주로 분단된 한반도의 다른 한쪽, 즉 남한의 지리적 근접성 때문이다. 북한으로부터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적 경제운영 체제를 박탈하면 북한 정권의 존립 이유 자체가 없어진다. 자본주의 체제인 남한의 바로 옆에 북한의 자본주의 체제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점에 있어서 한반도는 중국과 다르며 오히려 80년대 독일과 훨씬 더 유사하다. 서독의 계급투쟁 대상에 대해 이념적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동독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진지한 개혁을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고르바초프 전서기장이 예견했던 것처럼 목숨을 잃는 벌을 받았다. 한반도에서도 이런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
로널드 마이나르두스(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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