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OUT]'병원24시', 삶을 비추는 너무 솔직한 거울

  • 입력 2001년 2월 20일 15시 01분


'딱 일주일만 병원에 입원해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주변에 건드리는 사람 없이 혼자 조용한 병원에 누워 잠이나 실컷 잤으면….' 뭐, 이런 욕심이었는데 KBS2 <영상기록 병원24시>를 보면서 내 철딱서니 없는 꿈에 종지부를 찍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얌통 머리없는 얘기지만 사는 게 힘들고 재미없을 때, 남들 다 잘 사는데 나만 시시하게 살고 있다 생각될 때 난 <영상기록 병원 24시>를 본다. <영상기록 병원24시>의 주인공들은 겉보기엔 딱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의 주인공감들이기 때문이다.

'몸은 너무 아프지,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지, 엄마들은 맨날 울지, 병이 싹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지….'

보는 내 속이 다 답답해서 터질 것 같다. 게다가 저 모든 악몽이 누구에게 벌어질지 모르는 엄연한 현실이다, 생각하면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내 투덜거림이 너무 시시하게 느껴지는 거다.

<영상기록 병원24시>는 아픈 것에 대한 '낭만적 환상'도 완전히 깨버린다. 지난 18일 방송에 등장한 22살의 암환자 해영씨는 양아빠와 사는 재혼 가정의 맏딸. 공장에 다니며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다 병을 알게 되었고, 돈걱정 하느라 치료를 미뤄서 이젠 수술도 받을 수 없단다.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의 김희선이 떠오르지만 드라마와 현실은 너무너무 다르다. 김희선의 창백한 얼굴과 긴 머리는 간 데 없고,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다 빠져버리고 얼굴은 퉁퉁 부은 정말 '환자'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이 세상에 살기엔 너무 순수한 천사(?)"의 이미지는 찾기 힘들고 "잠깐 살아본 이 세상에 아직도 미련이 많은" 평범한 젊은이의 모습뿐이다. 가난한 여주인공의 병원비를 선뜻 마련해 줄 멋진 왕자님도 현실엔 없다. 병원비 때문에 쭈그리고 앉아 운동화 밑창을 오리는 생활인이 있을 뿐이다.

<영상기록 병원 24>는 늘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 같은 주인공을 보여주며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려고 애쓰는데 도대체 나같은 사람 눈에는 그 놈의 희망찾기가 너무 힘들다. 누가 병원비라도 턱 내놓으며 "치료에 전념하거라∼"하기 전엔 희망이니, 꿈이니 하는 것, 다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질 상황인 거다.

내가 '영상기록'을 통해 보는 건 숭고한 희망이 아니라 삶의 불공평함, 돈의 무서움, 인간 육체의 여림 같은 것들이다. 착한 사람도 죽을 병에 걸리고, 돈 없으면 꼼짝없이 죽게 생기고, 한없이 강한 것 같은 인간의 몸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마 앞에선 꼼짝도 못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작은 일에 툴툴대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살아라! 그런 거다.

한없이 우울하고 무겁고 슬픈 <영상기록 병원 24시>. 그게 우리나라의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현실이라면 우린 선진국 되긴 아직 먼 것 같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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