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 재판처럼 형사 무죄, 민사 유죄의 모순이 버젓이 동거하는 곳이 미국의 사법제도이다. 피고인의 생명이 걸린 형사사건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를 요구하지만 돈을 따지는 민사재판에서는 증거의 우세성을 놓고 승자를 가린다. 날씨가 온화한 플로리다는 은퇴한 연금생활자들의 천국이다. 플로리다 주법은 연금 생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연금을 압류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심슨은 매달 2만5000달러씩 미식축구 연금을 지급받지만 전처 가족들은 배상금을 받을 방법이 없어 플로리다 쪽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른다.
▷한국판 O J 심슨 사건이라는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이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오르내리며 사형과 무죄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 정도의 증거라면 범인으로 볼만하다’는 취지로 내려보낸 것을 고등법원이 ‘그 정도의 증거로는 범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치받았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확정판결 때까지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의 역사는 오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끔찍한 살인범이 자유를 선물받기도 하고 반대로 유죄판결이 확정돼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뒤늦게 누명이 풀린 사람들도 많다. 억울한 수형자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심슨처럼 일당 1만5000달러 짜리 초일류 변호인단을 선임하지 못한 것이라는 냉소적인 얘기도 있다.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마련된 제도를 통해 진짜 범인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형사재판의 태생적 결함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한다는 것 자체가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