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실험을 할 때 흔히 쓰이는 생물인 초파리는 1만3000∼1만4000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또 회충은 겨우 959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유전자 숫자는 1만9000개가 조금 넘는다. 따라서 이들 생물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한 인간의 유전자는 10만개를 훨씬 넘을 것이라고 예상돼 왔다.
그런데 인간 게놈에 대한 연구결과 인간의 유전자가 3만∼4만개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정 DNA가 특정 RNA를 만들고 이것이 특정 단백질의 생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의 학설을 고집한다면 3만여개에 불과한 유전자로 인간처럼 복잡한 생물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이 생겨나는 데 필요한 유전적 메시지의 수가 14만2000개라는 점에는 지금도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각각의 메시지가 서로 다른 유전자에서 나온다고 가정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데 있다.
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유전자 하나가 여러 개의 메시지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다세포 생물의 유전자는 유전암호를 지니고 있는 부분(엑손)과 암호가 없는 부분(인트론)으로 구성돼 있다. 인트론을 잘라내고 엑손을 잇대어 단백질 생산을 위한 신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엑손이 빠지거나 연결 순서가 달라지게 되면 하나의 유전자에서 여러 개의 메시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가설은 여러 분야에 걸쳐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하나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상(異常) 유전자 하나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해온 생명공학 업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깊은 영향을 받게 될 분야는 역시 과학이다. 현대과학이 잉태된 17세기 말부터 과학은 환원주의적 시각을 강력하게 옹호해왔다. 환원주의란 복잡한 구조물을 분해해 구성성분의 특징을 이해하면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이 지금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개의 유전자가 한 개의 단백질만을 만들어낸다는 가설의 붕괴는 생물학 분야에서 환원주의가 실패했음을 뜻한다. 인간을 구성성분(유전자)으로 쪼개기만 해서는 그 복잡한 구조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환원주의의 실패가 곧 과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적절한 과학적 설명을 찾아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우리 앞에 제시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제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3만여개의 유전자가 화려한 상호작용을 통해 빚어낸 인간은 이 과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http://www.nytimes.com/2001/02/19/opinion/19GOUL.html)
스티븐 제이굴드(하버드대 교수·동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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