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당신 인생은 잘 캐스팅 됐나" 송곳같은 메시지

  • 입력 2001년 2월 20일 19시 21분


분장실?

이곳에 대한 관객들의 이미지는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고 분장을 다듬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 정도일 것이다. 배우들을 위한, 배우들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울 동숭동 아룽구지 극장에서 공연 중인 오태석 연출의 연극 ‘분장실’(시미즈 쿠니오 작)은 그 성역에 있는 배우들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계속 등장하는 연기자는 4명밖에 없다. 이들은 거울과 분장 도구가 있는 단촐한 공간을 ‘죽은 자끼리의 대화’와 ‘산 자에 대한 엿보기’를 교차시키면서 무대를 이끌어간다.

이야기는 체홉의 ‘갈매기’에서 주인공 니나역을 맡은 배우 C(황정민)의 분장실에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2차대전 전후 각각 단역으로 출연하다 죽은 뒤 분장실에 사는 두 ‘귀신 배우’(이수미 조미혜)가 살고 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단역 배우 D(장영남)는 C에게 니나역을 달라고 조르다 병에 맞아 새로 귀신이 된다.

이 작품은 인생이란 단어만 나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주체를 못하는 무거운 색깔이 아니다. 가볍고 경쾌하게, 때로 진지하면서도 묵직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희노애락의 잦은 변주’가 묘미다. 또한 화장끼와 연기로 포장되지 않은 배우들의 ‘맨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점도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다.

“상대를 치느냐, 자기가 죽느냐야.…너 인간이 으르렁거리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라는 C의 독백은 시련이 가득했던 연기생활과 배역에 대한 집념을 드러낸다.

귀신 배우들이 주인이 나간 분장실에서 한번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멕베드’ ‘갈매기’ 등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배우의 삶에 대한 애처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대목에서 ‘멕베드’ ‘갈매기’의 명대사들은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소리로만 울릴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배우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이란 ‘큰 무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 “네 인생은 잘 캐스팅됐냐”며 송곳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오태석의 연출력, 네 여배우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3월25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3시 6시. 1만2000원. 02―745―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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