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북 수교조건으로 북한의 재래식무기 감축, 북―미(北―美)미사일협상 완전 타결, 대미(對美)합의사항 이행 등 3대 조건을 제시했다는 보도나 최근 미국을 방문했던 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이 “미국행정부 관리들의 북한에 대한 불신이 매우 강했다”고 한 20일의 국회 발언을 보면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성기류가 어떤 수준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기류가 계속된다면 19일자 뉴욕타임스 보도대로 한미관계는 ‘불편의 강도’가 점차 더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나 일부 인사들은 그동안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별일이 없을 것”이라며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외교부는 파월 장관의 얘기가 파문을 일으키자 “지난 7일 워싱턴의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는 파월장관이 대북 수교 3대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성명까지 냈다. 임원장도 국회에서 “(미국이) 몇 달 후면 우리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이처럼 미국의 강성기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애써 잘될 것이라고 ‘포장’하는 듯한 자세만 보이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파월장관이 말한 것으로 보도된 북한의 재래식무기 감축문제만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자리에서 나왔건 부시행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임원장도 “미국측이 북한의 재래식무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 이는 남북간의 문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우리하고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부인 성명을 내는 데만 급급했다.
군축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풀어 나가야 하지만 우리나 북한이나 모두 부시행정부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역할도 감안해야겠지만 그보다는 평양측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부시행정부의 주장에는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미간의 시각차를 솔직히 인정하며 그 바탕 위에서 이견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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